살인적인 스케줄이다.

한혜진(33)은 오전 3시까지 SBS TV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녹화을 마쳤다. 피곤한 몸에도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를 위해 피로한 기색을 숨겼다.

말 한마디에 집중하고 고심 끝에 입으로 생각을 전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주변평가는 빈말이 아니었다. 드라마 일정으로 빠듯하지만 “제가 폐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한혜진의 네 번째 영화다. 2009년 ‘용서는 없다’로 스크린에 데뷔한 후 ‘26년’, 애니메이션 ‘가디언즈’ 내레이션까지 포함해서다. 정통 멜로는 처음이지만 근래 찾을 수 없는 희귀 장르에 황정민(44)이 주연으로 출연을 결정한 후라 신뢰가 갔다.

 

“많은 분이 전형적인 신파이고 빤한 스토리라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완성된 작품과 대본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거든요. 더구나 황정민 선배님이 출연하시고, 조연 배우도 굉장하니 저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제가 너무 부족하니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연기는 오래 해왔지만, 영화는 많이 못 했어요. 드라마와는 다른 장르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는 극적인 상황보다 진짜 사람살이 같은 걸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덜 섬세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죠”라며 겸손해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대부업체 부장으로 살아가는 태일(황정민)이 수협에서 일하는 호정(한혜진)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조건 없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곽도원·정만식·김혜은·남일우 등이 조연으로 출연하며 가족애·사랑·헌신을 전한다.

 

한혜진은 “호정을 연기하는 게 버거웠다”고 털어놓았다. “이 여자가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태일의 연기에 반응해야 한다. 무언가 하려고 하면 과하게 느껴질 것 같아 수위 조절하는 게 힘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무사히 끝낼 수 있던 건 상대역 황정민 덕분이다. “선배님께는 굉장한 집중력이 있어서 덩달아 나도 젖어들고 집중할 수 있었어요.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많이 배웠죠.”

“드라마를 하다 보면 시간에 쫓기는 싸움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해 볼게요’라는 말을 못해요. 저도 순종적인 배우인 편이라 그냥 지나갈 때가 많죠.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 영화에서 ‘OK’ 사인이 나면 저도 ‘알겠습니다’하고 넘어갔거든요. 하루는 황정민 선배님께서 ‘너는 더 잘할 수 있는 자식인데 나쁘게도 그렇게 안 한다’고 하셨죠. 그 다음부터는 ‘저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고 말하게 돼요. 크게 채택이 안 되더라도 후회 없이 연기해보자는 마인드로 연기하게 됐어요.”

 


“결국은 좋은 영화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에요. 그 상황이 부담스럽고 피곤하더라도 내가 용기를 내서 할 필요가 있더라고요. 이제껏 주저했던 이유는 다시 했는데 그만큼 연기가 안 나왔을 때 저 스스로 부끄러움을 견뎌야 하는데, 그걸 견디지 못할까 봐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뻔뻔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다잡았다. “황정민 선배님이 저에 대해 빨리 파악하셨더라고요”라며 놀라기도 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계단에서 나누는 저돌적 키스신에서도 황정민에 대한 존경심은 이어졌다. “키스신이 어땠느냐고요? 하하하”라고 웃다가도 “역시 황정민 선배님”이라고 치켜세웠다.

“태일이 갑자기 바지를 벗잖아요. 황정민 선배님이 생각한 장면이래요. 연기도 그렇게 하면서 개그코드도 갖고 있는지. 센스가 있고 아이디어도 타고나셨어요. 생각도 확고하고, 받아들일 건 또 수용하고. 최고의 파트너세요. 생각해보세요, 선배님 나이에 멜로하는 분 없잖아요?”라며 감탄을 거듭했다.

 


그렇기에 호정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황정민 선배님과 같이 연기하게 됐는데”라는 마음에서다. “분석하고 연습을 하다가도 황정민 선배님 앞에 설 생각을 하면 얼음이 됐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선배님 앞에서 연기해낸 게 신기해요. '선배님과 호흡하고 사랑을 하고 에너지를 나누며 태일과 살았구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한혜진은 “멜로가 왜 어려운지 새삼 깨달았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관객들이 제일 잘 알고 있는 분야가 멜로예요. 다른 영화는 경험 안 한 일을 하지만 멜로는 이미 많은 사람이 경험한 부분을 보여줘야 하거든요. 현실감을 잘 살려야 하는 것이 부담이었죠”라는 말에서 마음고생도 느껴졌다. “다행히 영화를 본 분들이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 ‘사랑하고 싶어’라고 말씀해주세요. 제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였는데 많은 분이 그렇게 말해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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