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립 언론인

‘나는 어느덧 세상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이익 없이는 아무도 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이익 없이는 아무도 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형제도 계산 따라 움직이고, 마누라도 친구도 계산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게 싫었지만 내색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너 없이는 하루가 움직이지 않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돈, 시인 박용하)

 

“사람과 돈은 어긋나기 마련이라는 말도, 사람 나고 돈 났다거나 돈이 거짓말한다는 말도 다 옛말이다.

사람은 돈을 따라 가고, 돈이 사람을 내고 돈을 쥔 손이 거짓말을 한다.

오늘날 돈 잃은 세상이란 더 이상 사람 살 곳이 못된다.”

(시인 정끝별)

 

‘나에게 30원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하다.

나도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무수한 돈을 만졌지만 결국은 헛 만진 것. 쓸 필요도 없이 한 3, 4일을 나하고 침식을 같이한 돈-어린놈을 아귀라고 하지. 그 아귀란 놈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집어 갈 돈.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쥐의 돈. 그러나 내 돈이 아닌 돈. 하여간 바쁨과 한가와 실의와 초조를 나하고 같이한 돈. 바쁜 돈-아무도 정시하지 못한 돈-돈의 비밀이 여기 있다.’

(돈, 시인 김수영)

 

 

“내 돈이란 결국 돈 도둑인 ‘쥐의 돈’에 불과하고 ‘돈 없는 나는 남의 집 마당에 와서 비로소 마음을 쉬는’(휴식)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한다.

도무지 ‘정시(正視)’할 수 없는 돈의 정체이자 돈의 비밀이다.”

(시인 정끝별)

 

 

‘그만 일로 죄면할 게 뭐꼬. 누구나 눈 감으면 간데이. 돈 돈 하지만 돈 가지고 옛 정 살 줄 아나.

또 그만 일로 송사할 건 뭐꼬.

쑥국 끓이고 햇죽순 안주 삼아 한 잔 얼근하게 하기만 하면 세상에 안 풀릴 게 뭐 있노.

사람 살면 백년 살 건가, 천년을 살 건가.

그러지 말레이 후끈후끈 아랫목같이 살아도 다 못사는 사람 평생 니 와 모르노.’ (대좌상면오백생 對座相面五百生, 시인 박목월) “‘대좌상면’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앉는다는 뜻이고 ‘오백생’이 오백생 혹은 한없는 생을 거쳐야 만날 수 있는 인연이라는 뜻이니, 제목 ‘대좌상면오백생’이란 ‘서로 마주하고 앉은 오백생의 인연’ 혹은 ‘오백생의 인연으로 서로 마주하고 앉아’쯤으로 해석될 것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옷깃만 스쳐도 삼백생, 대좌상면이 오백생의 인연이라고 한다.

친구나 지인, 가족은 얼마나 깊은 인연이겠는가. 이 귀하고 소중한 인연을 돈 때문에 죄면(감정에 서로 걸리는 것이 있어, 보고도 외면해 버리는 것) 송사(訟事)할 수 있느냐며 어르고 달랜다.”

(시인 정끝별)

 

 

“남자들은 압박감, 갈등, 문제 앞에서 종종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자살의 경우는 이런 공격성이 자신에게 분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자살연구자 린트너는 지적한다.

절망의 순간에, 헤어지고 상처 입은 순간에, 직업적으로 실패한 순간에 남자에게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한 사람이 부족하다.

여자는 친한 친구에게 가서 마음을 털어놓거나 심리치료사를 찾아가는 반면, 남자는 혼자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남자는 어릴 적부터 감정 문제를 혼자 짊어진다.

남자아이들도 분노, 슬픔, 실망을 표출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려움이 줄어들 전망이 없고, 도움을 구할 전망이 없어 보이면서 절망감의 악순환에 사로잡힌 성인 남성에게 자살은 때로 자존감을 구하고 구질구질해지지 않는 마지막 수단으로 다가온다.

이런 마음에 자살을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남자들은, 특히 급진적인 방법을 취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목을 매달거나, 권총자살을 하거나, 선로에 뛰어들거나, 투신자살을 한다.”

(독일 정신의학자 볼퍼스도르프 외)

 

 

 

“남자는 타인과 고민을 나누는 것을 주저한다.

어떤 고통이든 홀로 감내하는 것이 남자답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런 폐쇄적 행위가 우울증, 자살로 이어진다.

자살 기도는 여자가 많이 하지만, 실제로 자살하는 경우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4배 많다.”

(미국 컬럼비아의대 교수 마리안 J 레가토)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자살자를 위하여, 시인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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