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재 언론인

노르만 왕조가 불과 30여 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윌리엄 2세가 사냥터에서 급사했다.

숲에서 날아온 화살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정복왕 윌리엄 1세의 둘째 아들이다.

아직 노르만 왕조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지배층은 노르만족인데 반해 백성들은 색슨족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순발력은 최고의 덕목이다.

윌리엄 2세의 동생 헨리는 사냥에 동행했다.

그는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움직였다.

형의 시신을 숲에 놓아둔 채 궁전으로 내달렸다.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정복왕은 장남 로버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차남 윌리웜을 좋아했다.

그래서 윌리엄에게 영국을 물려줬다.

로버트에게는 뼈아픈 말 한 마디와 함께 노르망디를 내줬다.

윌리엄 1세는 "로버트를 왕으로 모시게 된 노르망디는 불행할 것"이라고 내뱉었다.

셋째 아들 헨리는 이런 영지조차 얻지 못했다.

그저 돈을 조금 물려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둘째 형 옆에서 식객으로 얹혀 살았다.

영지에 대한 갈망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큰 형 로버트는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로버트의 대리인이 영국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런던에 나타났다.

하지만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헨리가 워낙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다.

헨리는 사냥터에서 돌아오자 마자 친한 귀족을 몇 명 불러모았다.

그들은 "헨리가 국왕"이라고 선언했다.

대주교도 없었기에 주교로부터 서둘러 왕관을 받았다.

헨리 1세로 즉위했다.

행동은 신속했지만 정통성은 떨어졌다.

지지 기반을 강화하면 정통성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헨리 1세는 영리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흔쾌히 내줬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유 헌장(Charter of Liberties)'에 서명했다.

이 헌장은 불법적인 조세징수 금지 등을 골자로 했다.

귀족의 기득권 보장에 초점을 맞췄다.

어차피 새로운 권리를 양보하는 것도 아니었다.

노르만 왕조는 주식회사 비슷한 형태로 출발했다.

윌리엄 1세는 영국 정복에 나서면서 5000여 명의 기사를 동원했다.

이들에게 땅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귀족과 기사들은 왕과 함께 영국을 정복했다고 여겼다.

세월이 흘러도 이런 인식은 이어졌다.

100여 년 후 헨리1세의 증손자 존(John)이 왕위에 올랐다.

존은 이런 전통을 읽지 못했다.

욕심이 역량을 압도했다.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지만 연전연패였다.

잇단 전쟁에 따른 부담을 귀족들에게 전가했다.

더욱이 대주교 선임 문제로 교회와도 대립했다.

곳곳에 적(敵)을 만들었다.

마침내 귀족들이 반기를 들었다.

존은 귀족들의 요구에 따라 대헌장(Magna Carta)에 서명했다.

대헌장의 내용은 '자유 헌장'과 대동소이하다.

귀족의 저항권을 인정했다는 게 새로운 내용이다.

왕은 귀족으로 구성된 25인 위원회의 권고를 따라야 했다.

왕이 권고를 거부하면 귀족들은 무력으로 맞설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존은 달라져야 했다.

배알이 뒤틀렸지만 귀족들을 설득했다.

왕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존은 노르망디 수호를 위해 귀족의 지원을 요청했다.

도미노 이론으로 귀족들을 설득했다.

존은 "프랑스는 노르망디를 삼키면 영국 본토를 침공할 것"이라며 "노르망디를 방어 기지로 삼아야 햔다"고 강조했다.

귀족들도 수긍했다.

왕이 요구한 금액은 삭감했지만 군비 지출을 승인했다.

'막가파' 군주가 통치가 아니라 정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예나 지금이나 협력은 어렵다.

정치권이 메르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키 위해 초당적 협력을 다짐했다.

중앙 정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메르스 대책을 놓고 각을 세울 때 많은 국민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협력을 강화해도 어려울 판에 불협화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정쟁을 자제하는 게 맞다.

책임 소재나 대응 방향을 놓고 공방을 벌이면 효과적인 대책은 기대키 어렵다.

기(氣)싸움을 벌이기 보다는 협력을 통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메르스를 퇴치하는 시점도 앞당길 수 있다.

협력은 내주는 데서 시작된다.

얻으려면 내줘야 한다.

중앙정부나 여당이 먼저 내줘야 한다.

그래야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결과가 좋으면 그 공(功)은 중앙정부나 여당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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