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재 언론인

파티의 유혹은 강렬하다.

분위기에 취해 자제력을 상실한다.

통음(痛飮)을 피하기 어렵다.

숙취의 기억은 아스라이 사라진다.

파티가 끝나면 큰 고통이 기다린다.

경제 운용도 마찬가지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곳곳에서 불평이 쏟아진다.

'기우(杞憂)'라는 비판도 나온다.

냉정과 뚝심을 발휘하기 어렵다.

살리나스 멕시코 대통령은 설레는 마음으로 1994년 새해를 맞았다.

6년 임기 중 마지막 해였다.

멕시코는 유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멕시코 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살리나스는 1992년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서명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NAFTA는 1994년 1월부터 발효됐다.

하지만 NAFTA가 체결되자마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멕시코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멕시코 대통령은 6년 단임이다.

살리나스는 아쉬웠지만 후임 대통령 후보 콜로시오를 지지해야 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에 매달렸다.

자금 조달을 위해 '테소보노스(tesobonos)'라는 단기 채권을 발행했다.

금리는 기존 채권보다 낮았지만 달러화 상환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악재가 잇달아 돌출했다.

남부 치아파스의 반군(叛軍)이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데 이어 콜로시오 대통령 후보가 티후아나에서 암살당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이들은 멕시코 정국 불안에 대한 우려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 하락 압력은 갈수록 높아졌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로 멕시코의 달러보유액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마침내 파티는 끝나고 말았다.

멕시코 정부는 그 해 12월 13~15%의 페소화 평가 절하를 발표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악했다.

멕시코 정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평가절하는 없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금리를 인상하는 동시에 자유변동환율제로 돌아섰다.

그 후 4개월 동안 페소화는 50%나 평가절하됐다.

물가는 24%나 뛰어올랐다.

미국은 95년 1월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멕시코에 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멕시코 경제불안 여파로 불법 이민이 늘어나고, 다른 신흥국가들로 경제위기가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IMF는 멕시코 정부에 구제금융 조건으로 긴축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IMF의 단골 처방이다.

세금을 늘리는 대신 지출은 줄여 빚을 갚으라는 얘기다.

허리띠를 살 돈도 없는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했다.

멕시코 국민들은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

숱한 사람들이 고금리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은행에 집을 넘겨줘야 했다.

1995년 한 해 동안 노동자 실질임금은 25% 이상 감소했고, 실업률은 두 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IMF가 그리스 사태로 다시금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획일적인 긴축 프로그램 때문에 경제 체질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리스 경제는 긴축 여파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영양실조 환자에게 채혈을 강요한 꼴이다.

밀턴 프리드먼 전 시카고대 교수는 "IMF가 '관료적 자기권력 강화(bureaucratic self-aggrandizement)'에만 매달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선진국 금융회사의 무책임한 투자에 대해서도 구제금융을 통해 자금 회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책임은 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비판의 수위가 더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IMF를 '글로벌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축'으로 비유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과거 피부색을 차별 기준으로 삼았다면 IMF는 빈부(貧富)를 잣대로 나라마다 대우를 달리한다.

가난한 나라는 IMF로부터 돈을 빌리는 대가로 피눈물을 쏟아낸다.

IMF가 그리스 사태 해법의 하나로 '부채 탕감'을 제시했다.

과거 IMF의 행태로 보면 분명 '파격'이다.

그렇다고 자본의 속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는 언제 어디서나 괴롭다.

정부나 개인이나 재정 건전성을 잃으면 말 못할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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