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철규 목사 익산시 기독교 연합회장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단순히 세계에 자랑할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요, 선조들의 지혜와 숨결이 담긴 문화를 통하여 시공을 초월한 대화 가운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정신적 문화를 다시 살펴볼 기회이기에 더욱 뜻 깊은 일이다.

홍익인간을 시작으로 반만년을 이어오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는 불과 백여년 전에 끊어질 위기를 당하였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그 정신은 일제 강점기와 민족 말살 정책 앞에 풍전등화와 같았다.

강력한 총과 칼 앞에 홍익인간, 깨달음, 인의예지, 사랑의 정신은 위태로웠다.

하지만 인고의 36년 동안 민족의 피의 값으로 확인한 진리는 눈에 보이는 힘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정신의 총체, 문화의 힘이었다.

역설적으로 민족의 문화가 가장 미약할 때에 오히려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하였다.

우리의 정신이 존폐의 위협을 당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 마음속엔 민족의 문화를 향한 사랑이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백범 김구 선생은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는 글에서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부력이나 무력이 아닌 드높은 문화를 가지고 인류의 평화에 공헌하는 나라를 꿈꾸지 않았는가.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이 뜻 깊은 날에 눈에 보이는 결과로도 기뻐해야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기뻐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문화 강국이 되어 사람을 섬기고 평화를 이루며 함께 번영을 누리는 것이 유구한 우리 문화정신에 부합하는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 할 수 있다.

허나 지금 우리 문화는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꿈을 꾸지 않으며 현실에 타협하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웃은 안중에 두지 않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혼자 살아남기에 급급하다.

우리의 어른들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그늘과 아픔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부의 침략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찬란한 문화는 우리 자신으로 인해 또 다른 위기를 겪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어야 할 호남에 흐르는 유구한 문화는 무엇인가?

드넓은 호남평야가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일본에 문물을 전한 백제의 문화정신, 종 또한 식솔로 먹여 살리던 부자의 넉넉한 마음, 판소리를 통해 힘없는 자의 소리와 그 소리를 낼 수 있는 마당이란 공간과 정신, 민족의 자유를 향해 드높이 태극기를 휘두르는 소녀의 기상, 민주주의라는 대의 아래 희생당한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며 함께 행진하였던 대학생들의 실천하는 지성이야 말로 호남에 흐르는 유구한 정신이 지닌 문화가 아닐까.

옛 백제의 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이 뜻 깊은 날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단순히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요, 문화와 정신을 꽃 피우고 열매 맺는데 있다.

풍요로움의 정서로 나눔을 실천하던 백제의 정신은 동서로 분열된 해묵은 지역감정을 뛰어 넘는 것으로, 대지주가 가난한 자를 먹여 살리던 넉넉한 마음은 빈부의 격차로 벌어진 불신의 골과 미움의 상처를 메우는 것으로, 가지지 못한 자의 소리를 담아내는 우리의 소리 문화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나눔으로, 자유와 평등을 향해 태극기를 휘날리던 소녀의 기개는 공정한 기회 제공으로 인한 인재 양성으로, 이웃의 희생에 동참한 실천하는 지성은 홍익인간을 회복하는 것으로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다.

예수님의 정신으로 부연 설명하자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야 말로 우리가 이어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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