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중 건축사

바람이 머무는곳 앞산 옆구리을 지나바람이 불어온다.

정지나무 앞을 지나. 골목을 돌아 온담 밖 거리 아낙들이 빨래하는 손등을 돌아 긴 골목길을 따라 막다른 파란 대문집 마당에 편한 곳을 찾아 잠시 쉬었다가 까막제를 넘어간다.

바람이 쉬어가는 곳, 내 어릴적 취암리 시골집이다.

그 집에서 우리 가족은 오랜 세월동안 행복하고 편했다.
 

건축은 사람의 생활을 담는 그릇이다.

건축의 공간속에 사람의 삶과 활동이 없다면 한갓 구조물에 불과하다.

땅과 하늘 사이에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은 사람의 영혼을 수용하고 역사를 창출한다.

파란 하늘높이 우뚝 선 초고층 빌딩사이로 한 마리 새가 날아가는 모습에서도 사람들은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

건축과 사람이 하나 되는 영혼의 자유.도시 이미지를 창출하는 건축사는 시대의 삶과 풍경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남기는 흔적, 산다는 일은 어쩌면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공간과 그리고 풍경, 변화무쌍한 삶에서 시대적 징표를 남기는 일은 다른 예술이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집을 짓지 않는다.

다만 사고 팔 뿐이다.

투자와 생활공간으로서의 집은 전문가의 손길에서 탄생하는 무형의 자산이다.

집에 가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집 속의 시간, 공간, 삶의 흔적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삶의 가장 기초적인 공간인 집에서의 시간이 편안하다면 그 주인의 삶이 안락할 것이다.

사랑 또한 둘이 함께 집을 지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은 자연친화적이어야 할 것이다.

운봉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연로하신 그의 부모님이 계신 아래층을 지나 이층 나무계단을 오르자 주홍빛 황토방이 나왔다.

방안에 들어서자 한쪽 벽을 세로로 길게 붙인 유리창 너머로 하늘, 구름, 산이며 나무들이 온통 한눈에 들어왔다.

창이 자연을 담은 액자가 되고 있었다.

경주 양동마을 고가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대청마루에서도 산천경개를 가까이 품고 살았던 조상들의 지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높다란 빌딩들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이같이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건축설계가 있다면 고달픈 삶이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성당 또한 자연을 매개로 하고 있었다.

직선을 배제하고 곡선을 최대한 살린 건물의 실루엣은 바람이 지나가듯, 물결소리가 들리는 듯 인간 본성의 선함과 부드러움을 표출한 현대 건축의 백미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같이 훌륭한 건축물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은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

 

예술이란 작가의 감각으로 허공의 빈자리를 채워가는 일이다.

흔히들 시(詩)를 말씀(言)의 사원(寺)이라고 하듯이, 건축 또한 삶의 시가 될 수는 없을까. 역사와 시간과 삶이 켜켜이 쌓이는 건축의 공간이 ‘생존’만 있음이 아니라 편안히 쉴 수 있는 ‘생활’이 함께 할 수 있다면 팍팍한 삶이 보다 부드럽게 영위될 수가 있다.

작가들이 언어의 유희로 흰 백지를 채워나가듯, 세상의 빈곳들이 건축사의 땀이 스민 예술혼으로 채워질 수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다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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