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창기자의 한 장의 음반이야기
킹 크림스 'EPITAPH'

'그렉 레이크' 고독 담긴 목소리 표현

인간은 생을 마치면 자연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땅에 묻혀 영원한 숙면에 취하는 것이다.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았던 삶이 오히려 무색하게 여겨질 정도다.

무덤 옆엔 쓸쓸한 묘비명이 있기 마련이다.

무덤 주인의 이름과 삶이 간략하게 기록돼 있고, 우리식으로 보면 자손들의 이름까지는 확인할 수 있다.

묘비명은 얼핏 쓸쓸함 그 자체다.

왕으로 살았던 부자로 살았던 아니면 가난한 걸인으로 삶을 지냈던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작은 땅 아래 쓸쓸하게 지내야 한다.

이게 인간의 운명인 듯싶다.

팝계에서 ‘묘비명(EPITAPH)’은 1969년 킹 크림슨이 발매한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 가장 유명하다.

킹 크림슨의 가장 대표곡일 뿐 아니라 한 곡에 담긴 여러 음악적 표현과 시적인 가사는 지금 들어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렉 레이크의 고독에 담긴 목소리는 ‘묘비명’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으며 나머지 멤버들의 연주 또한 딱히 단점을 잡기 어려울 정도다.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대부분 사람들은 ‘묘비명’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헤비메탈 그룹 ‘주다스 프리스트’도 ‘묘비명’이란 제목의 곡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 뿐이다.

곡은 9분이 훌쩍 넘는 킹 크림슨의 곡에 비해 러닝 타임이 매우 짧다.

약 3분 내외다.

또 장엄한 연주와 스케일이 큰 킹 크림슨의 곡에 비해 달랑 피아노 반주와 보컬이 전부다.

킹 크림슨의 ‘묘비명’을 생각했다간 낭패를 볼 정도로 아담하고 소규모이지만 들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가장 강력한 음악을 선보였던 헤비메탈 그룹의 노래라 하기엔 너무 서정적이다.

가사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매우 염세적이다.

손이 흔들릴 정도로 힘이 빠진 노인이지만 지나간 향수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의 어제는 우리의 내일이란 내용이 흘러나온다 2018년 새로운 해를 맞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있다.

화재로 인해 아까운 생명들이 운명을 달리했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관련 대책을 쏟아냈지만 변함이 없다.

먼저 간 이들은 어떤 묘비명을 가질 것인가.

남은 사람들은 이들에게 어떤 묘비명을 줘야 할 것인가.

고달픈 삶과 희망이 없는 날을 살아온,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한 가닥 끈을 놓길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EPITAPH(묘비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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