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맛이 있다.

바로 추억의 맛이다.

사는 게 팍팍한 날.

온몸에 힘이 빠질 때, 계절에 수레바퀴에서 무언가 충전이 필요할 때, 추억의 음식은 위로가 된다.

바로 나에게는 콩나물국이 그런 음식이다.

우리의 먹거리 속에 차지한 콩나물의 추억은 콩알만큼이나 뿌려져 있다.

겨울이 시작되고 신 김치가 맛이 드는 이때쯤이다.

우리 집 부엌에는 자주 콩나물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겨울 채소가 없던 시절 콩나물은 화려한 변신으로 식탁을 차지했다.

콩나물무침으로 콩나물찜으로 때로는 콩나물밥으로 콩나물 잡채로 한 겨울 식탁을 주름 잡았다.

그중 겨울철 차거운 밥 한 그릇과 어울리는 메뉴는 바로 콩나물국이었다.

콩나물국의 대가이셨던 어머니의 비법은 바로 정성 육수다.

길쭉 날 죽 콩나물과 살짝 맛이 간 콩나물도 어머니의 육수와 만나면 곧바로 얌전한 맛이 된다.

일단 육수는 큰 양은 솥이 제 격이다.

재료의 충분한 맛을 건져내려면 양이 충분해야 한다.

물이 가득한 양은 솥에 살짝 볶아낸 큰 멸치가 듬뿍 황태 머리도 몇 개 집어넣는다.

양파.

표고버섯.

거기에 약간 말라비틀어진 무를 듦성 듦성 썰어놓고 센 불에 푹 끓인다.

마지막에 다시마를 몇 장 살짝 넣었다 꺼낸다.

바로 어머니의 콩나물 비법은 바로 이 정성 육수였다.

여기에 송송 썰은 잘 익은 배추김치.

콩나물.

고춧가루.

천일염 소금 약간.

마늘.

파를 넣고 마지막 새우 젓을 한 수저 넣으면 칼칼하고 시원한 김치 콩나물국 완성이다.

양은 솥 한가득 콩나물국은 며칠 먹거리다.

부엌 한 귀퉁이에서 식구들을 기다린다.

해 질 녁 까지 늦게 놀다 들어온 형제들에게도, 거나하게 술 한잔 드시고 온 아버지를 위한 늦은 밤 식사에도 콩나물국 대령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 아침이면 양은 솥에 콩나물국은 살얼음이 수놓아져 있다.

마치 금간 유리창처럼 날카로운 콩나물국에는 시러운 기억이 서려 있다.

  콩나물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친숙한 식재료다.

2002년 과학 동아에 자료를 보면 콩나물국이 숙취해소에 좋은 이유는 콩나물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산(아스파르트산) 덕분이라고 한다.

콩나물에는 피로 회복에 좋은 아스파라긴산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예로부터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말이 있듯 콩에 있는 단백질은 영양가가 높다.

또한 콩은 단백질 외에도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칼슘, 철, 칼륨 등 몸에 좋은 다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식품으로 여기는 콩의 종류도 무려 50여 가지에 이른다.

콩나물은 수분이 거의 80~ 90 프로이고 섬유질이 풍부하다.

따라서 장운동을 촉진시켜 배변활동을 도와주고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다.

콩나물은 콩을 발아시켜 시작된다.

콩나물이 자라는 과정에서 콩에는 거의 없던 비타민B2나 비타민C가 많이 생성돼 피로 회복과 피부 미용에 좋은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

콩나물은 유일하게 시간과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

많은 과일 채소들이 햇빛과 흙.

물이라는 3대 조건에서 자라지만 콩나물은 유독 물 하나면 된다.

시장에서는 아직도 맘 좋은 아주머니 만나면 콩나물 한 봉지가 단 돈 1000원이다.

콩나물은 여전히 값싼 식재료의 대명사이다.

사실 늘 가까이 있어서 그 가치를 잊고 있는 식재료가 바로 콩나물이다.

  시인 이병률은 이런 시를 썼다.

“국을 끓여야겠다 싶을 때 국을 끓인다.

국으로 삶을 조금 적셔놓아야겠다 싶을 때도 국 속에 첨벙하고 빠뜨릴 것이 있을 때도 살아야겠을 때 국을 끓인다.

”라고 읊었다.

벌써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치열하게 달려온 일 년을 적셔 줄 콩나물국이라도 끓여야겠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가치를 잊었던 이들을 위해 먼저 물을 붓는다.

독하게 달려온 일 년을 적시려면 이 콩나물국에는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야 할 것 같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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