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조선이 몰락한 이유

고종 이명복, 무능한 통치자
비극적 역사에 대한 책임 물어

동학민란이 있어났을 때 어떤 신하도 외국 군대를 불러 민란을 정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를 암흑에 빠뜨린 노론을 포함한 모든 중신들마저 반대하는 속에 비밀리에 '민비민자영'의 민씨 척족을 통해 청나라에게 진압을 요청했고 그 이후 결과는 아시는 대로 입니다.

그런데 동학란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의한 것은 다 아실 테고, '조병갑'은 이후 1년의 고금도 유배만 받고 판사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그뒤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에게 직접 사형 판결을 내립니다.

그를 복귀시킨 것은 당연히 '고종'이죠.

이런 암울한 내용들이 처음 부터 끝까지 반복됩니다.

'고종이명복'을 몰아내기 위한 유생들을 포함한 많은 세력들의 반란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선조들이 무지렁이 바보들만은 아니었던 것이라 기뻤습니다.

기쁜 것이 말이 되는 감상이라뇨! 게다가 왜 꼭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쪽으로 갔을까 했더니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열강 모두에게 다 제의했었고 거절 당해서 할 수 없이 러시아에 갔었다는 깨알 상식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경우도 많았고요.

지금도 덕수궁 주위에 미국 대사관을 뺀 여러 대사관이 있는데 끝까지 덕수궁에 머무른 것은 여차하면 아무 대사관이나 담장을 넘어 도망치려는 한심한 깊은 뜻이 있었더군요.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의 세상을 '흥선대원군'이 마감합니다.

다만 경제 관념이 없어 당신 경제력으로 무리인 경복궁 중건을 하느라 경제를 폭망시킨 것 말고는 잘못이 없던 아버지의 정책을 친정을 한답시고 모두 원위치시키죠.

예를 들면 강화도 방위를 죽음을 무릎쓰고 했던 병인양요나, 미국을 막아낸 신미양요는 물론 상대의 피해는 적었고 우리 쪽만 몰살했지만 막긴 했는데요.

일본의 강화도 침공은 일본이 달랑 대포 한 발 쐈었더군요.

그런데도방위하던 문관들은 맞서 포도 안 날려보고 대포 한 발에 항복했습니다.

상대는 안될 망정 맞서 소총 한 방이라도 쐈었어야 했을 텐데요.

이는 병조판서 등을 모두 무신에서 문신으로 바꾸고 안보를 위해 거둔 모든 세목을 없앤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권력 유지를 위해 믿을 놈들은 처가 밖에 없었는지 민씨 척족의 세상을 만들고 퇴위 때까지 민씨들과 나라를 대차게 말아 먹는 기록입니다.

그나마 남은 단 하나의 지하자원인 운산 금광 등을 팔아 먹었을 때는, 일을 하는 조선인에게 미국인들이 합법적 체벌을 할 수 있게 허락했으니 애초에 애민정신은 눈꼽 만큼도 없던 통치자였죠.

그가 밑바닥 부터 일어서도록 해준 덕인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나라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즉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적 사고 방식을 가진 민주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맨 땅에 헤딩한 민족이 유대인 만큼의 간난신고를 겪고...

그가 잘한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임오군란 이후에 궁궐에 전등을 밝게 켜놓았는데 밤새 남사당 패거리와 판소리 명창을 불러 새벽 4시가 넘도록 놀다가 자서는 오후 3시에 일어나는 행각을 퇴위 때까지 반복합니다.

민씨척족이 가져온 서류만 보고, 건의하는 중신들은 안 만났고 상소마저 어느 시점 이후 금지시키죠.

그러나 안성의 남사당 패거리로서 당시로선 천시되는 직업이었고 게다가 여자였던 '바우덕이'나, '박유전' 등의 판소리 명창들이 유명해지게 만든 토대를 확립해주긴 했습니다.

군주가 일은 전혀 않고 노느라 그런 것이지만요.

나온지 얼마 안 된 싱싱한, 이루 말할수없이 서글픈 책입니다.

첫장 부터 마지막 덮을 때까지 탄식이 나옵니다.

우리 선조들이 희대의 暗君의 통치를 받았더군요.

그러니 아직도 나라를 팔아먹은 일이 오히려 나라를 살리는 일이었다는 무리들이 활개치죠.

/박정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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