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원형에 대한 동경을 담다

전통 굿판 20여곳 방문 밤낮 기록
세계 민속의 원형 찾아간 기행문

누구를 존경한다면 다수 고매한 인격이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 또는 아름다운 이타적 행동이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을 쓴 분은 제가 존경하는 5인에 들어가는 분입니다.

4인은 차차..^^.

그를 처음 안 것은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열화당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굿> 20권을 본 후였습니다.

짧게 그 책들을 말씀드리자면 전통 굿이 벌어지는 20곳을 방문하여 굿판이 벌어지는 현장을 밤잠 안 자고 사진으로 남긴 기록입니다.

굿판을 구경해보았었는데요.

巫人들에게는 중요하겠지만, 일반인들에겐 별 흥미가 없는 <바리데기 설화>, <제석굿> 같은 지루한 사설 등을 수 시간 읊습니다.

내용은 어쩌다 실수해서 옥황상제가 아끼는 천도복숭아를 따먹은,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하자면 금단의 섹스를 하여 지상으로 쫓겨난, 천상의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갖은 고생 끝에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내용입니다.

사설이 늘어지는 지루한 시간들을 감기는 눈꺼풀을 쥐어뜯어가며 기다리다가, 진도 씻김굿을 예로 들자면, 베찢기의 시간에서야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친분이 돈독해지지 않으면 무인들이 찍도록 허가하지 않으니 이미 사전에 술판으로 친해지지 않으면 안되었을 겁니다.

알코올로 생기는 체력 소모와 기다림으로 남긴 그 기록엔 이후 인간문화재가 되는 동해안 별신굿의 '김석출', 진도의 '박병천'의 정정할 때의 사진이 들어있어 사료의 가치도 있습니다.

무속에, 그것도 40년이 넘은 흑백사진이 그득한 책들이라, 가치에 비해 재출간의 상업성이 전혀 없어서 19권의 책은 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서울진오기굿> 한 권은 아직도 찾으시는 분들이 있는지 구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네이버에서 전체 책의 사진 만큼은 무료로 볼 수 있게 작업하는 선행을 했습니다.

대다수 한국의 巫人들에게 이모, 누나, 삼춘, 형님 삼고 국내 작업을 마감하여 더는 국내에서 찍을 대상이 없어집니다.

이후 동아일보를 나와 여섯 달은 국내서 돈 벌고, 나머지는 주로 민속의 원형이 남아 있는 오키나와 부터 인도 까지 자기 돈 써가며 사진으로 남기다 태국 어느 곳에서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어디에서도 취재료는 줄 수 없었으니 주민들과의 친화를 위해 술을 열심히 마시며 친분을 다지는, 몸으로 떼우는 반복된 패턴을 밟았답니다.

그는 조절이 잘 안되는 당뇨 환자였었습니다.

주민들이 해주는 음식 대접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책은 그의 기준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키나와의 석양 부터, 같이 출판된 <아시아의 하늘과 땅>이라는 사진집의 표지를 장식한 온몸을 붉게 칠한 인도의 무당까지를 취재하며 남긴 소회를 담은 수필입니다.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돈 한 푼 안 되는 일을 해나가는 이유가 나오는 책입니다.

그는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사라져가는 대상들의 도저한 아름다움에 숙명처럼 반해 작업을 하였던 것입니다.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싸구려 동정심이 아닌 그들이 아직 안 잃은 인간의 원형(Archetype)에 대한 동경을 담아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요지는 간단하지만 기행문의 형식이어서 덜 문명화된 곳들의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 자리해서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기행문 중에서 감동을 받은 책 두 권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역시 작고한 '이성형' 교수의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입니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문화재급의 책!!!!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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