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정 '다크 투어'

한국전쟁때 실종된 오빠를 애타게 찾던
할머니··· 그의 존재를 찾아 길위에 오르다

제28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작인 김여정의 ‘다크 투어’가 발간됐다.

이 책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국전쟁 당시 목포형무소에서 실종된 오빠를 애타게 찾던 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할머니가 살아생전 내내 그리워하던 오빠의 존재를 찾아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 저자의 특별한 여행기다.

여행길에서 그는 깔끔한 아파트 단지로 변한 목포형무소의 자리, 시민공원이 된 희생자들의 묘지 등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학살의 장소를 마주한다.

이를 계기로 저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아름다운 풍경과 화려한 리조트로 은폐하고 있는 학살의 역사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결심한다.

더 나아가 할머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날 속에 여전히 살고 있을 ‘학살 피해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크 투어를 시작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18년, 인터넷은 김정은 위원장의 밈으로 넘쳐났다.

과거를 모른 채 자라난 젊은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으며 ‘김정은’이라는 인물도 그저 밈으로 소비될 뿐이었다.

베트남 전쟁이나 걸프 전쟁도, 노근리 사건도, 5월의 광주도, 제주 4·3사건도 모두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만 존재하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제주도는 신혼여행이나 여름철 휴가지 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모래가 피로 물들었던 바닷가는 관광지가 되었고, 그곳은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곳일 뿐이니 말이다.

조지 스타이너가 한탄한 것처럼 우린 모두 “계획된 기억 상실”에 걸렸다.

하지만 이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붙들고 아시아 학살지를 돌아다니면서 기억의 목격자를 자청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의 저자 김여정이다.

앰네스티를 비롯한 NGO에서 활동해 온 그는 학살 피해자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 여행을 시작했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기원을 담아 이 책을 썼다.

1990년대, 조지 스타이너는 ‘리멤브런서’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한 바 있다.

저마다 전쟁 기념탑에 적힌 이름을 열 명씩 외워서 혼자서 혹은 가까운 사람에게 들려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땅의 누군가는 그 이름을 기억하는 셈이니 말이다.

토벌대가 죽창으로 마을을 들쑤시고 불로 태우는 것을 직접 본 그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외양간에서 소와 말이 내지르던 소리를 듣던 제주도의 김평담 할아버지는 밤마다 낡은 공책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소리 내 읽어 내려갔다.

제주 4·3사건 피해자들의 이름이었다.

그 어떤 개념을 떠나 김평담 할아버지는 본능적으로 학살을, 과거를 기억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김평담 할아버지가 학살 피해자를 기록한 것을 또 기록으로 남긴 이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를 읽을 뿐이지만, 이 슬픈 여행기를 읽고 기억하며 이 여행과 기록에 동참하게 된다.

어떤 여행은 끝이 있어 즐겁지만, 끝나지 않아야 하는 여행도 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생때같은 가족을 잃은 이들이 남아 있는 한, 이 여행에 끝이란 것은 있을 수 없을 테니.

저자가 걸었던 슬픔의 지도를 따라 책 속을 걸으며 우리는 과연 “계획된 기억 상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억 상실에서 빠져나와 끝나지 않는 여행에 동참할 수 있을까.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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