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종교의 지배이데올로기

카렌암스트롱, 공자 서=사랑 같아
공자 사람냄새나는 사회 만들고자

'논어'를 다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카렌 암스트롱>, 대단한 그녀 덕분입니다.

'축의 시대'에서 '논어를 그토록 극찬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편견없이 마치 처음 접하는 책을 대하듯 다시 읽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첫독서 때 이미 적개심을 가득 품고 모든 것을 위선이라고 본, 내심 팽개치고 경멸한 이유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까지 겪고, 유학의 본토 중국 마저 그 봉건적 색채로 열강들에게 수모를 당했었으니 이제 유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겼었죠.
<카렌 암스트롱>이 공자의 이타적 사랑의 개념인 '서(恕)'가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설파했지만  왜 '논어'가 불후의 명저인지를 이제야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녀 덕분입니다.
<공자>가 활동할 때는 약육강식의 춘추시대에 모두 생존에 몸부림칠 때였습니다.

자신들만 구원받으리라고 굳게 믿으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사랑을 역설하는 <예수>님을 맞이한 상황과, <공자>님의 '恕'를 맞이한 春秋五覇의 입장과 같은 것이었을 거라는 발견! 그만큼 당시의 주류의 입맛과 맞지 않은 주장을 외치고 다녔던 것이죠.

춘추전국시대 부터 진나라 까지 유학은 그저 마이너한 학파였죠.

제자백가의 한 분파로서 사람다움과 지도자다움을 외치고 더 나은 사람 냄새나는 나라와 사회를 만들자고 다녔었으나, 漢나라 때 국가 이데올로기가 된 이후 인간을 위한 학문이 통치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반전이 된 것이죠. 그중 보다 정치 편향인 <맹자>의 사상이 근간이 되어 교조적으로 변합니다.

더 가관인 것은 이슬람 수니파 중 거의 꼴통인 '와히비즘'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것처럼, '맹자'에서 잠깐 언급된, 마음과 기운의 개념을 불필요하게 발전시킨 성리학이 宋나라 이후 더 괴물이 된 것인데요.

조선까지 지배해버리죠.

여진의 淸나라가 고증학으로 성리학의 득세를 막은, <공자>님 말씀과 <맹자>의 견해 자체로 돌아가 원형을 논하도록한 것은, 臣權이 비대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철학이나 종교도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면 권력지향이 되어 버립니다.

유교국가의 폐해를 겪어보지 않은 <카렌 암스트롱>이 맑은 눈으로 '논어'를 볼 수 있었던 것이죠.

종교가 비록 권력이나 금전 지향으로 타락하여도 순수를 지키는 건강한 분파가 항상 정화를 시켜 주지만, 종교가 아닌 학문인 유교는 自淨이 어려웠기에 막장까지 타락했습니다.

책의 내용은 어차피 <공자>님의 팬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젊어서 읽으신 분들도 다시 한 번 보셨음 합니다.

하지만 혹시 여태 유교에 대해 쓰고 있었을지 모르는 색안경은 꼭 벗으셔야 합니다.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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