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당 서정주, 시 만큼은 '인정'

소장 중인 시집이 한국 또한 외국 포함 천여 권 됩니다.

시집들의 두께가 대개 얇아서 어지간하면 사놓고 밀쳐 놓는 경우가 드물어서 대부분 읽었습니다.

제 느낌으론 아무리 번역의 난점을 감안해도 詩에 관한 한 전 세계를 통틀어 <미당서정주> 만큼 잘 쓰는 이가 아직 없습니다.

물론 번역본을 본 실력이지만 영문, 독문, 불문,중문 또한 일문 전공자랑 맞장을 떠도 좋습니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미당>이 살아있을 때 저자와 대담한 내용으로 착각하고 구입했습니다.

저자가 문학 평론가의 입장에서 <미당>의 시 80수를 추려 해설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애호가의 입장에 꼭 들어가야 하는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같이'나 '신부' 등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국보와 보물을 분류할 때 예술적 가치는 전혀 없어도 '울진 암각화'처럼 역사적 의미가 너무 높아 국보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미당>의 시의 경향 변화에 반드시 중요한 것을 포함시키다보니, 읽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그리 감동 받은 기억이 없었던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판본부터 각각의 판본을 시 한 수마다 비교하여 개정 여부를 가렸으니 이 책을 출판하는 일이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었을 것 같았습니다.

 <보들레르>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사실처럼 음울한 '문둥이'를 첫 시로 해서 출발하는데, " 애비는 종이었다." 로 시작하는 자화상을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주었다는 조금은 엽기적인 일화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여성인지는 모르나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흘러흘러 '그를 키운 팔할인 바람' 때문인지 만주로도 떠돌고, 그의 인생 중의 큰 두 가지 오점 중 하나인 일제를 찬양하는 시도 쓰고, 광복 후에는 심지어 <이승만> 전기도 쓰기도 합니다.

  '귀촉도'를 발표한 것이 광복 후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때인데, 고교 국어책을 빛내던 '국화 옆에서' 등이 불과 서른셋에 쓰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남들 40대 후반에나 다다르는 시적 성찰을 이마에 피가 조금 마른 나이에 알았다는 것이죠.

그때 부터 <미당>이 한국 시에 관한 한 본좌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귀촉도'는 제 느낌으로는 별반 높게 평가할 수 없던데, 전공자도 아닌 주제라 혼자만 잘난 체 할 수 없어서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책의 저자가 '귀촉도'에 혹평을 하기에 동지 만난 듯 나름 반가웠습니다.

비평이란게 본인이 싫어도 남들이 다 좋다면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용기'를 내기가 좀 그렇습니다.

아마 이책을 추천하는 적극적 동기가  되었을 수도....

남들 다 겪는 한국동란 때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자살 시도도 했다 합니다.

58년에 동국대 부교수가 되어 안정을 찾았는데 덜컥 여제자를 연모하게 되었답니다.

나름 도덕적으로는 고결했는데, 그 여제자를 향한 들끓는 성욕을 표현한 시 몇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60년도, 즉 45세 무렵 부터 발기부전에 빠지고 갑자기 도인에 가까운, 불교적 색채의 시를 쓰게 됩니다.

2011년에 나온 작고한 <이문구>가 쓴 '문인기행'을 읽어보니 인사 간 자리에서 <미당>이 <이문구>님에게 딥키스를 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해서 양성연애자인가 생각했었습니다만, 요즘은 발기부전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름의 처절한 몸짓이 아니었을까하고 느껴집니다.

그래도 동성애적인 것을 시험해봤다는 것은 참 요사스럽게 느껴집니다.

사진을 보면 자꾸 '박수 무당이나 남창을 하는 사당패가 그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느껴집니다.

어느 대목 부터 발기부전이 승화된 시였는지는 구입하시면...

<미당>의 오점 두 가지, 일제 찬양과 <전두환> 찬양입니다.

덕분에 지금은 없어진 '문학정신'이라는 출판사도 운영할 수 있었는데 책 끝 무렵에 비겁한 자신을 변호하는 시를 씁니다.

한국 문단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 찬양,  제 1공화국 정권 때는 초기엔 <이승만> 말기엔 <晩松 이기붕> 찬양, 제 3공화국 때는 <박정희> 찬양으로, 제 5공화국 때는 <미당>이 <전두환> 찬양으로 비겁으로 얼룩진 문단 역사의 최정점을 찍었습니다.

인품 마저 고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 <예이츠>도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하기도 했었으니, 욕을 할지언정 우리에게 왔다간 인류 최고의 詩鬼를 사랑하기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정민·의사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