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욱 '민살풀이춤'

군산 권번장금도의춤 300수 시조 엮어
6부구성 새로운무희 춤 전승되길 소망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춤인 민살이풀이춤이 아름다운 시조로 재탄생됐다.

장욱 시인의 ‘민살풀이춤’은 일제 강점기 군산 소화 권번 기생 장금도의 민살풀이춤을 시조 300수로 엮어냈다.

저자는 이에 앞서 먼저 나온 시집 시조로 쓴 한량춤 ‘조선상사화’를 집필하면서 한량춤 뿐 아니라 승무 살풀이춤 등 전통 민속춤을 공부하게 됐다.

그때 살풀이춤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가장 아름다운 민속춤임을 깨닫게 됐다.

살풀이춤을 영상을 통해 감상하고 논문들을 섭렵하며 논리적 의미를 공부하던 중 민살풀이춤이라는 충격적 춤을 만나게 된다.

그것도 전북 남원의 조갑녀, 군산의 장금도라는 당대 대가의 춤과 맞닥뜨렸다.

민살풀이춤은 살풀이 장단에 맞춰 추는 살풀이품인데, 여느 살풀이품과 달리 명주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는 춤이라서 민짜라는 의미가 붙여진 이름이다.

시조를 쓰자고 결심했다.

시조는 민살풀이춤을 형상화하는 데 내면적으로나 형식상으로 잘 부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 ‘민살풀이춤’은 일제 강점기 군산 소화 권번 장금도라는 기생의 ‘민살풀이춤’을 시조 300수 한 권 시집으로 묶어냈다.

전편의 시는 장단과 춤사위라는 하나의 끈에 줄줄이 연결돼 펄럭인다.

시집은 총6부로 구성됐는데, 2부 앞살풀이, 3부 자진몰이, 4부 동살풀이, 5부 뒷살풀이는 본래 연희되는 춤의 구성이고, 1부는 춤이 시작되기 전 세월 속 그늘에 묻혀 있던 기생 장금도의 인생사를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6부는 모든 춤이 끝나고 난 후 모든 것이 끝났다는 쓸쓸함과 생의 허무 어딘가로 춤을 보냈다는 아쉬움이 섞여 감정이 여러 빛깔로 여울져 있지만, 다시 마지막 시에서는 빈 대지 위에서 장금도 이후 또 다른 전수자가 이 춤을 고스란히 전승하기를 소망하며 새로운 무희의 춤을 꿈꾸고 있다.

장금도 민살이춤은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는 민짜 살풀이이다.

수건을 들지 않는 이유는 장금도가 군산 소화 권번 시절 스승 도금선을 사사할 때 경상도에서는 입춤이라 해 수건을 들고 추었고, 전주에서는 이를 살풀이춤이라 해 수건을 들지 않고 추었다.

장금도 민살풀이춤은 현장성이 강한 즉흥적 특성이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반주자들의 그날 흥에 따라서 선율이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는 가변성과 아울러 춤추는 사람도 자기 흥에 따라 반주음악을 밀기도 하고 땅기기도 하면서 춤가락을 이어간다.

또 다른 특성은 살풀이장단에 맞춰 추기 때문에 무겁게 추며, 뒷모습을 보이지 않고 춤출 때 몸은 반듯하게 손가락은 곧게 펴고 발놀림은 다소곳하게 엉덩이가 빠지지 않게 한다.

저자는 “장금도는 춤을 추고 시인은 시를 쓴다. 바람은 물결을 출렁이게 하고 물결은 마음에서 익고 익은 춤날개를 꺼내 춤을 춘다”며 “장금도는 하늘에 스며들었지만 아프지 마라 이마 짚어주는 따뜻한 손길 같은 조선의 춤 흰 빛 민살풀이춤은 영원하리라”고 밝혔다.

정읍 출신인 저자는 전북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1992년 문학사상 신인발굴대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전주기전중 교장을 역임했고 풍남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사랑살이’, ‘사랑엔 피해자뿐 가해자는 없다’, ‘겨울 십자가’, ‘시조로 쓴 한량춤 조선상사화’, ‘두방리에는 꽃꼬리 새가 산다’, 논저 ‘고하 최승범 시조시 연구’ 등이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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