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패한 당통, 권태에 대한 진지한 고찰 담겨

풍운아 당통, 프랑스 대혁명
그의 죽음과 몰락 과정 담아

<안제이 바이다>가 감독하고 <제라르 디 빠르디외>가 주연한 '당통'이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있는데 놓쳤었습니다.

간절하진 않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맞는 지 모르나 대본이 <게오르크 뷔히너>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조르주 당통>을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자코뱅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상당한 미식가이고, 여자를 신분과 연령을 따지지 않고 두루두루 사랑하며, 타고난 웅변가로서 그가 없었으면 자코뱅이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능력은 타고 났죠.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에 비해 따뜻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유로운 인간미와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필요하면 뒷돈 받기를 서슴치 않는 비도덕적인 인물로서 혁명의 완수를 위해서는 제거될 수 밖에 없었죠.

희곡은 나름 매력있는 주인공을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직 낭만주의가 겨우 움튼 19세기 초엽에 벌써 매우 허무적이고 실존적 인물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는 작가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도덕한 뇌물수뢰자 <당통>을 실존적 고뇌에 빠진 인물로 묘사하여, 도덕성에 대한 문제점을 실제로는 민중들에게는 <당통>의 목보다 빵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로 바꿔 놓았습니다.

민중에게 식량을 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의도야 좋지만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식량을 구할 수가 없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혁명이 실패한 이유가 <로베스피에르>가 부패한 <당통>을 살려서 안고 가지 못했기 때문인 것은 맞지만, 만약 안고 가서도 실패했다면 다른 평가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는 <당통>이 풍운아랄까, 그의 죽음이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기 때문이겠죠.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시각이 너무 우파적인 <앙드레 모루아>의 프랑스사에서는 <당통>의 죽음에 너무 실망하여 <로베스피에르>를 최악의 인간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작가는 결과적으로 자코뱅이 무너진 것이 너무 아쉬워서 어쨌든 <당통>의 몰락이 너무 애탔던 것 같군요.

제겐 명작이라기도 애매하고, 졸작이라기도 하기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학적/철학적으로 <당통>의 부패를 실존적 권태를 이유로 만든, 권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한 점으로서는 한 세기나 시대를 앞선 작품입니다.

그의 죽음의 도덕성에 대한 토론 또는 고찰을 포커스로 하지 않으면 명작입니다.

실제로 상연된다면 재미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엔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명저를 소개하겠습니다.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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