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거의 매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다 보니,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좋은 건 역시 몸 상태가 괜찮아진다는 것이고, 산을 오르고 내리며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일이 있을 때 등산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산에 올랐음에도 불구, 하산하면 꼭 한 잔 씩 뒷풀이를 하다보니 그건 등산으로 인한 부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산을 자주 다니면 다닐 수록 주량도 늘어나는 것 같으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지인들이 너스레를 떤다.

지난 해에는 출근하기 전인 새벽 6시에서 8시까지 근처 산을 많이 다녀 1년에 108번 산에 올랐다.

올해는 새벽 산 대신 좀 멀고 높은 산 위주로 다니기로 마음먹었는데, 주말 내내 다니다보니 지난 일요일까지 72차례 산에 올랐다.

올해는 80번 정도로 산행이 마무리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등산에서 중요한 건 '안전'이다.

산은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가 아니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는 건, 등산 일정의 딱 절반이다.

무사히 내려와 하산주 한잔 하고 잘 귀가하는 게 등산의 마침표다.

그러나 하산길이 쉽지 않다.

최근에 경기도 양주, 파주, 연천에 걸쳐 있는 감악산을 다녀왔다.

높이는 약 675m이니 적당하다.

초보에게는 체력적으로 당연히 어려운 산이고, 등산을 좀 다닌 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산이다.

설악산이나 북한산, 무등산, 모악산처럼 이정표가 잘 돼 있는 산은 오르거나 내리는 일정에 크게 무리가 없다.

이정표 대로만 잘 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악산처럼 조금 덜 알려진 산은 하산길이 어렵다.

이번에도 내려오다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맸다.

처음에는 곧 길이 나오겠지 하다가도, 조금씩 걱정이 된다.

멧돼지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여기에서 넘어져 발목이라도 다치면 어떻게 연락하나 등등 이런저런 걱정으로 하산을 더 서두르고, 그러다 결국 헤매게 된다.

한참 헤매다 원점을 찾았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저번 주에는 서울 강남구, 서초구에 걸쳐 있는 구룡산을 다녀왔다.

구룡산은 306m다.

등산 초보들에게 아주 좋은 산이다.

교통 접근성이 좋고 등산 전후로 보이는 강남 뷰도 괜찮아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산이다.

그런데 그 '낮은' 산에서도 하산하다 길을 잃었으니, 1년에 100번 산에 가는 사람이 맞나 싶다.

조금만 내려가면 강남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있는데 어쩌다 길을 잃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초겨울이어서 낙엽이 가득하기 때문에 길이 안 보이는 것도 있지만, 여하튼 길을 잃었더니 두려움이 엄습한다.

왜냐하면 인적이 없는 산길에는 뱀이나 흥분한 멧돼지가 있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날 송아지 크기만한 고라니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강남구에 있는 산에 고라니가 있다니?  이러저리 무사히 내려왔지만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는다.

만만하게 보고 대충 하다가는 길을 잃을 수 있다.

그에 따른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고, 차근차근 오르고 마지막 원점까지 조심해서 하산해야 한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 결과는 등산 과정과 비슷하다.

정상에 오르는 게 끝이 아니라 정상을 밝고 원점으로 잘 돌아오는 게 목표다.

선거의 마지막 투표와 개표는 등산의 원점회귀와도 같다.

내년 3.9 대선이 이제 오늘로 꼭 90일 남았다.

여야의 주요 대선 후보들은 이미 당내 경선이라는 '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지금은 '본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

원점으로 잘 내려가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은 물론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하산 막판에 길을 잘못 들면, 다리를 다칠 수도 있다.

그래서 원점에 도달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김일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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