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3학년인 딸아이와 대화하다 한 방 먹었다.

건축공학과에 다니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는데, 난 대뜸 남자 친구냐고 물었더니 여자 친구란다.

이어서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그럼 그 친구는 성격이 좀 남성적이니?’ 였고, 딸아이는 곧바로 눈을 흘기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다.

전공학과를 선택하는데 남녀 구분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고, 나는 우리 때는 안 그랬다.

건축이나 토목 등 공과대학에는 남학생이 많이 갔다 라며 꼰대 마인드를 내비쳐 괜한 핀잔만 받았다. 

이번 대선에서 이른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는 2,30대에서 ‘젠더 갈등’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갈라치기 전술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대다수 후보들이 국민통합을 외쳤지만 과연 어떤 것이 국민 통합의 길일까.

이런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후보가 결국 당선되었다. 그러나 여가부 폐지가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

한국에서는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고 2005년 여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으며 ‘호주제 폐지’등 굵직한 일도 해 온 바 있다. 

여성가족부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과 명칭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자체가 남성차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예산의 사용처를 보면 한부모가정, 아이돌봄서비스 등 가족정책에 80%, 청소년정책에 20%, 성폭력 등 피해자지원에 10%, 정작 여성정책에는 8%만이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조차 도외시한 채 너무나도 막연하게 여가부 폐지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다.

미혼모나 한부모 입장에서는 여가부의 이러한 예산이 친정 역할을 해 왔는데, 그 분들에게 여가부가 폐지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정부 부처의 변경은 법의 개정이 있어야하기에 국회의 입법 절차가 선행되어져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사실이다. 

유튜브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페미니즘’ 논란으로 소중한 목숨을 포기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여성’ 경찰이라는 이유로 범인 제압을 제대로 못했다며 여경에게 비난의 화살도 쏟아졌다.

페미니즘이란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으로 정의된다.

한국 사회에서 양성 평등의 문제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일터에서도 남녀간 임금 격차나 승진에 있어서 불이익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한국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여성의 경력 단절은 심각한 사회 현상이며, OECD 29개 국가 중 유리천장 지수는 최하위, 스펙이 같을 경우 남녀의 임금 격차는 18%를 넘어서고 있는 등 고용시장에서의 불평등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대남들은 남녀불평등의 문제가 과거 세대의 문제라고 말한다.

본인 세대에서는 여성에 비해 그 어느 것도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 없으며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견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젠더 갈등의 문제를 특정 세대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가는 사회에서 젠더 갈등 해결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공론의 장도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양 성간 관용과 배려의 사회적 분위기 형성도 이루어져야 한다.

양성평등과 함께 2,30대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와 좌절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정책이다.

대선은 끝났다.

이 사회 젠더 갈등이 과거 위정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양분된 영호남 갈등처럼 더 이상 비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병철 한국노총 전주시지부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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