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전주시의회의장
/이기동 전주시의회의장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던 ‘조경묘’, 정확한 명칭으로 ‘전주 조경묘 정묘’가 지난 25일 최종적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조경묘의 중앙에 자리한 정묘 1동이 보물로 지정됐고, 그 주변의 부속 건물은 현재로서는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니다.

 조경묘는 정묘뿐 아닌 이를 관리하고 의례를 추진하는 부속재 구역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조경묘의 기능에는 부속 건물들의 역할 또한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이번 보물 지정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부속재가 함께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지만, 추후 더 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조경묘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길 기원한다.

 조경묘는 풍패지향 전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지만 경기전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물은 아니었다.

조경묘는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의 부인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사당으로 경기전의 뒤편에 위치해 있다.

이씨 왕조의 뿌리인 시조 이한을 모시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를 짐작할 수 있으며, 1771년(영조 47년)에 처음 지어진 이후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학적 가치 또한 큰 건물이다.

 특히, 조경묘는 사례가 많지 않은 18세기 왕실 사우로서, 창건과 관리, 운영, 제향에 국가가 깊이 개입한 왕실 건축물이다.

그런 만큼 조경묘는 귄위 높은 형태로 건립됐다.

조선시대 사당 건물의 보편적 공간구성과 건축 형태를 따르되 왕실의 격식에 맞게 정면 3칸 측면 3칸의 9칸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영녕전처럼 공포에 이익공의 포작을 두어 사묘 건축 중 종묘를 제외한 가장 높은 등급의 건축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의미와 건축학적 가치가 큰 조경묘의 보물 지정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긴 시간 많은 지역 인사들의 논의와 건의가 이어졌다.

본인을 비롯한 전주시의회 또한 조경묘의 그 가치를 알리고 학술적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2018년과 2020년도 두 차례에 걸쳐 학술회의를 개최하며 조경묘의 승격을 논의했다.

 ‘전주 조경묘 정묘’가 보물로 지정된 것은 뜻깊은 일이지만 아직 전주시에는 그 의미에 비해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조경묘와 관련 있는 곳이 바로 조경단이다.

사실, 조경묘는 신위를 봉안한 곳일 뿐 조선왕조의 시조인 이한의 묘는 전북대학교와 동물원 사이 건지산 줄기 조경단에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조경단은 영조 시기 경기전 북쪽에 건립된 조경묘보다 더 늦은 시기인 고종 시절에 만들어졌다.

사실, 영조 때 조경단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제단을 쌓고 제사 지내는 것은 황제만이 가능하다는 일부 대신들의 반대에 결국 사당인 조경묘가 건립된 것이다.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가 1899년(광무 3년) 단을 쌓고 비를 세우며 조경단이 설치됐다.

 조경단 또한 경기전, 조경묘와 함께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상징하는 공간인 만큼 이번 조경묘 보물 지정에 힘입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

조경단에 대해 문화재청에서 진행 중인 심사와 향후 조사 등이 순조로이 이루어져 후백제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역사 문화의 도시 전주가 문화적 역량을 더욱 활짝 꽃피우기를 희망한다.

/이기동 전주시의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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