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補藥

김홍부

 

고추밭이 소방도로 공사로 많이 들어가네요

그게 너희 엄마 보약이지

두 봉 하던 일이 한 봉이면 되고

육묘 키우는 온도, 물주기 일이 줄어드니

 

지주대 새우고 뽑는 일 돕던 손자들 손뼉 칠 것이며

자람에 따라서 끈으로 잡아매기

뙤약볕에 과로로 쓰러질 위험

비바람에 매 맞을 일

붉은 열매 가려서 따는 일

허리 다리 아픔이 모두인 칠순 할매에겐 구름빵 한 바구니야

 

고추밭 줄어 안 서운하세요

너희 할매 서운하겠지만

자연이 주는 보약 먹고

즐기면서 쉬엄쉬엄 가는 법을 배울 때이거든

 

김홍부 시집<양지에 서다>(이랑과 이삭. 2023) 중

산 밑까지 땅을 개간하고 억척스럽게 농사지을 땅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적 있다. 평생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에겐 땅은 삶의 전부이다. 휴경지란 생각해 본 적 없다.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파도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손가락을 바라보면서도 아픈 허리를 괴고 불편한 다리를 끌고라도 땅을 놀리면 죄라고 생각했다. 땅은 하늘이었고 목숨줄이었다. 

농촌이 변하고 살림살이 넉넉해졌어도 땅을 놀리지 못하는 촌부에겐 차라리 땅이 없어야 쉴 수 있다. 고추밭이 소방도로가 나면서 줄어들게 되었다. 서운하지만 생활의 무게도 가벼워졌다. 일 보다 쉬어야 할 나이에 맞게 땅의 면적이 줄었다. 농촌의 현실은 이래저래 편하지 않다. 이제는 줄어든 몸집만큼 땅도 줄었다.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벼운 게 좋다. 소방도로는 농촌의 현대화된 현실과 촌부의 미래를 지표처럼 선을 긋고 있다. 농촌에 사람은 언제나 귀하다.

-김현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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