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그늘                             

김계식  

 

본인이 본인임을 확인하기 위해

무인拇印을 찍으라 했다

‘오류’란다

오류라니 내가 나 아니란 말인가  
 

인간 아닌 기계앞에서

몇 번을 되풀이하여 사정해보아도

싸늘한 냉기는 급전직하急轉直下 아닌 것이 분명하다는 진한 고딕체  

손가락 지문이 닳아질 만큼 열정을 쏟은 일도 없는데

오직 나만이 것이었다는 자존을 송두리째 앗아간 주범이란 세월 앞에  

푹 꺾은 고개로 날로 달로 더욱 짙어지기만 할 나이의 그늘을

천천히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무인拇印: 도장을 대신하여 손가락에 인주 따위를 묻혀 그 지문을 찍은 것  

김계식 시집<그런 사람 있음에>(인간과 문학사.2023)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도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조금씩 다름과 변화가 있다.

과거는 현재를 위해, 현재는 미래를 위해 변화하는데, 변화에는 ‘낡음’도 함께한다.

“국가는 망할 수 있어도 역사는 사라질 수 없다”는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라 문제가 아니라도 자신이 역사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역사로 존재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시인에게 시를 짓고 시를 남기는 일은 가장 의미 있는 유산이며 역사일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장대한 일기는 『승정원 일기』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해 놓았다.

그것을 토대로 실록을 편찬한다.

그렇다면 선비들은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조선의 선비들은 시로 일기를 썼다.

그 예가 퇴계 이황의 『퇴계집』이다.

그것도 시가 맨 앞에 나온다.

1~5권이 시이고 다음이 공문이고 다른 글이 실렸다.

율곡 이이가 남긴  『율곡전서』도 초판본 11권 중 맨 앞권이 시였다.

그리고 날짜 순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그들이 남긴 시만 보아도 쉽게 일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조선만이 아니고 당나라 송나라 선비들도 이와 같이 했다.

선비들은 글자놀이에 빠질까 봐 시에 정성을 다하는 것을 경계했지만 그들은 시로써 일상을 기록하였다.

김계식 시인이 서른 두 번째 시집을 냈기에 언급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시를 너무 고상하고 문학적으로만 여길 일이 아니다.

일상이 곧 시가 되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김 시인이 존경스럽다.

소개한 시제가 「나이의 그늘」이다.

나이와 그늘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면 시인의 역사가 된다.
-김현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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