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장애인체육회 김성호 과장
/전북장애인체육회 김성호 과장

쾌(快. Lust)라는 단어가 있다. 유쾌, 상쾌, 통쾌, 쾌락등 인간이 추구하는 사고와 감정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같은 방향을 쾌, 반대 방향을 불쾌(不快)라고 부르고, 반대의 느낌이며 저항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쾌는 사고의 관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므로 의식에 순응하는 것이며 개인마다 다르다. 유쾌함과 불쾌함은 조금 더 구체적 심리 표현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더 편하고, 더 맛있고, 더 예쁘고, 더 좋고........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고 익숙해지는 과정은 현대사회에서 물질의 과잉 공급으로 인하여 발생한 인간의 무한 욕망의 발현이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인간이 사회의 제도와 물질에 길들여지게 되고, 패배자와 승리자는 점점 타인 또는 개인의 감정과 사고에 극단적으로 충실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세상을 지나치게 자기 상황에 맞춘 이분법적 사고로 나와 다름에 대한 관용성과 이해력이 높지 않게 되어 사회적 혼란을 야기 시킨다. 이것이 극단적이면 사회는 야만화 되어 혼란이 오게 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불쾌함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 나와 다름에 포용력을 갖게 되어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거부감을 없애는 것은 시작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게 되므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는 것이며, 이것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한다.

또한 사회 질서 또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교육 정책을 보면 그 시대의 국가가 원하는 시민상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여기에 운동을 연결 하여 생각해보자.

운동(신체 활동)을 실행하는 것은 편안함에 대한 저항, 즉 불쾌감을 스스로 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불쾌감을 통하여 저항 에너지가 발생하여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즉 불편, 불쾌는 에너지를 발생 시키며 생명과 삶에 대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운동을 통하여 느끼는 불편함이 현재의 존재를 증명하게 하며, 우리 육체와 정신 건강의 항상성(Homeostasis)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국가의 체육 정책을 보면 원하는 시민상 또한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신체 활동이 습관화 되면 능동적 신체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이는 현재처럼 고도의 메타버스화(상징문자, metapresentation) 세계에서 실체와 허구의 세상에서 균형감을 가지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동되어진다.

귀찮고 하기 싫은 것은 불쾌의 결과물이지만, 그것을 통해 '내'가 더 나아지고 훌륭해진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한결 마음이 차분해지고 괴롭지 않게 그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장애가 있거나, 아직 마음이 확고하지 않은 유소년 시기에 운동은 불편함에 대한 포용력 학습이고, 주변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어 좋은 공동체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훌륭할 수는 없지만 훌륭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살기 좋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로 역사가 증명해준다.

운동을 통한 자기 수련이 하나의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전북장애인체육회 김성호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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