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대부분의 국민은 정치인을 권위적이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의전을 자신의 체면이라 생각하며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주민의 말을 듣겠다며 지역의 주민을 만나면서도 주민들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정치인도 있다. 이렇다 보니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리 없다. 

이제 정치인도 변해야 한다. 물론 과거의 정치인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더 변해야 한다. 가장 먼저 좀 더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권위적인 태도로는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 필자는 국회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전문위원과 보좌관 등의 생활을 하면서 소통의 기본은 권위를 버리고 좀 더 낮아지는 것임을 절실하게 경험했다. 정치인이 권위의식을 갖는 순간 사람들은 정치인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권위의식에 가득 차 있으면서 어떻게 소통하겠나. 만약 권위의식을 내세우면서 소통을 한다는 정치인이 있다면 이는 오산이다. 소통과 가르침의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은 국민을 다스림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소통’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막히지 않고 통한다.’이다. 권위의식이란 “막힘”이다. 정치인과 국민 사이의 권위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정치인은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집중해야 한다. 입은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만큼 더 들으라는 말이다. 또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죽을 때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힌다는 말을 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삶의 최후의 순간까지도 ‘들음’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정치인은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듣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선거철에는 듣는 척을 하지만 선거운동현장에서 조차 정치인은 무엇인가 자꾸 먼저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유권자인 국민은 정치인의 ‘말하기’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심지어 이제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사실 일반인 중에서도 자기주장이 먼저고,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 정치인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왜 권위의식을 버리고 경청해야 하는 것일까? 권위의식에서 벗어나면 더 많이 듣게 된다. 더 많이 들으면 더 많이 소통하게 되고, 소통하다 보면 배우고 깨닫는 게 많아진다. 정치인의 입법과 정책은 소통과 들음에서 나온다. 권위의식을 집어던지고 경청하게 되면 현실적인 입법과 정책적 대안을 찾게 된다. 국민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국민과 가까워져야 하고 가까워지려면 권위의식에서 탈피해야 하며 좀 더 많이 들어야 한다. 

필자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때로는 한 시간 이상 듣는 경우도 태반이다. 듣다 보니 듣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듣다 보면 상대방으로부터 개인사와 가정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다. 때로는 사적인 비밀도 많이 공유하게 된다. 그만큼 가까워진다. 정치인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지역에서 일반 주민과 많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 정치인이 많아진다면 정치인은 그만큼 주민과 친근해지고 신뢰도 쌓게 된다. 이제 권위의식을 버리고 동네 사람 곁에서 좀 더 많이 듣는 정치인이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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