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 삶에 얽힌 구시렁 소리

원로 시인의 발자취가 담긴 첫 수필집 발간
문학계 현황-문학인 일화 등 맛깔나게 표현

도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조기호 원로시인이 이번엔 첫 수필집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펼쳐놓았다. 25편의 시집을 비롯해 2개의 동시집과 장편소설 ‘색’을 발간하며 지칠 줄 모르는 창작력을 선보였던 조기호 원로시인은 이번 수필집을 통해 다시 한 번 창작의 한계가 없음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첫 수필집에 대한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본업이며 많은 시간을 소모한 시에 비해 수필은 틈틈이 시간 나는 데로 엮어본 터라, 그동안 발표했던 시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게 엄연한 사실이라 고백한다. 수필과 시의 두 장르 사이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간극이란 당부도 덧붙였다.

하지만 수필집은 80 넘게 살아온 원로시인의 발자취요, 삶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시인 역시 수도 없이 지나갔던 오솔길을 걸으며 지난 세월 살아왔던 이승의 발자국을 되새긴다. 

어린 시절 호기심 많은 눈으로 바라봤던 세상은 변함이 없건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많은 게 변했다. 산과 들과 논다랑이 등으로 정감 넘치고 포근했던 고향은 사라지고 타향보다 더한 타향이 된 고향은 아득함만 가득하다.

모자란 듯, 영특한 듯 종잡을 수 없는, 이제는 세상을 떠난 외삼촌도 불현듯 떠오른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보청기와 휠체어, 플라스틱 막대기에 의존하며 살아야 할 작금이 맥이 찰 정도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이명에 고생하고 있지만 이런 현실도 시인 특유의 유머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젊은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터, 시인의 기억은 도내 문단의 숨은 야사들이 배여 있다. 4부 ‘구시렁거리는 소리’는 시의 존재이유에 대한 나름의 논리와 함께 문학상에 얽힌 이야기 한 토막 등 당시 문학계 현황과 함께 활동했던 문학인들 그리고 이들에 얽힌 일화들을 맛깔나게 표현한다. 상금을 화장실에서 받았던 일화와 함께 상금이 사라져버린 현재의 문학상에 대한 조그마한 불만도 숨기지 않는다. 

문단에 등단했지만 시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직도 분간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지부식 간에 글쓰기 중독자가 됐고, 회복할 수 없는 글쟁이 병자가 돼 버렸다. 덕분에 인생을 심심치 않게 보냈다. 이마저 없다면 팍팍하고 건조무미하고 삭막했을 터, 시를 쓰는 것에 대해 고맙기만 하다. 

저자는 “섬세하고 마음의 밑바닥에서 표출해내는 아름다운 심리묘사를 느낄 수 있는 다른 작가들의 수필집에 비해 심리 위주가 아닌 사건 위주로 엮은 듯 해 독자와 수필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럽다”며 “이런 글도 수필의 범주에 포함되는지 의심을 해 보며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못되었음을 널리 이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저자는 ‘저 꽃잎에 흐르는 바람아’, ‘육자배기’ 등 25권의 시집을 비롯해 장편소설 ‘색’ 1. 2권, 동시집 ‘오월은 푸르구나’, ‘아 그 배나무 꽃잎은 흩날리는데’ 등을 펴냈다. 한국문학 백년상, 후광문학상, 목정문화상, 전북문학상, 한송문학상 외 다수 수상이력이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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