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세이11>










<그림에세이11> 이종구의 '밥- 세 그릇'
장춘실(진안주천중교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우정 희망….” 독서토론 시간. 약간은 애매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열다섯 살 중학생들은 거침없다. “그래, 사랑 우정 희망 모두 중요하지. 그렇지만 너무나
피상적이구나. 다른 건 없을까?” 무엇인가 아쉽단 표정으로 돌아보는 교사의 눈길을 피해
구석에서 소곤거리듯 나오는 대답이 있다. “밥이오.” 우~ 갑자기 교실은 웃음이 넘친다. 행여 자신이 터무니없는 대답을 한 것은 아닌지 주눅이 드는 아이. “그래
맞았다. 밥이다 밥.”

밥! 날마다 먹지만 대접을 못받는 밥이다. 웬일인지 밥은 우습고 속되며 헐값이란
생각이 숨어 있다. 특히 학문이나 예술과는 어울리지 않아 입에 올리면 점잖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는 진리를 잊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밥’을 그린 화가가 있다. 이종구, 그는 십여 년전부터
고향인 서산 오지리의 모습을 우리 농촌의 전형으로 그려내고 있다. 정부미 부대에 그린 사실적인 표현은 생생한 농촌의 현실을 전달한다. 전통적인
화구인 캔버스를 버리고 정부 양곡부대나 한지 소반 비료부대종이 등 아클릴릭 물감이 묻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그래서 그는 재료를 넓힌
화가로 칭송받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작품 ‘밥’시리즈이다.

서울 시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53점의 민중미술 작품 가운데 이종구의 그림은
13점이다. 그중 4점이 ‘밥’이다. 둥근 소반에 올라 앉은 흰 고무신 한 켤레.
네모진 밥상에 누릉지 한 접시와 깨진 밥사발 조각 그리고 수저 한 벌. 홀로 밭 매는 아낙의 고단한 뒷모습과 멀리 보이는 농협의 로고. 이 모두가
‘밥’의 내용이다.

참고도판의 ‘밥-세 그릇’ 역시 둥근 소반에 차려진 밥이다. 깨진 밥사발의 파편이 밥 대신 올라 앉은 밥상. 그나마 3인분으로 차린 것에 위로 받아야
할런지…. 90년대
초반에 그려진 이 ‘밥’ 연작은 더 이상 피폐해질 수 없는 농촌의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뛰어난 묘사력과 경험에서 우러난 주제는 보는 이를 사무치게 한다. 또한 주제와 걸맞는 재료의 사용은 정직하고 자연스럽다.

엉뚱하게도 이종구의 ‘밥’ 연작을 보니 대선후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의
‘밥’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은 누굴까? 혼자 받는 깨어진 밥상이 아니라 여럿이 나눠 먹을 풍성한
밥상을 차려 줄 참된 일꾼은 누구란 말인가. 밥은 목숨이니 함부로 맡길 수 없다. 오년 동안 손가락 타령이나 하면서 속을 끓이기는 더욱 싫다.
아, 나는 고민하겠다.

사진설명 : 이종구의 1993년작 밥 – 세그릇.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