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마리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마리아

 

성탄절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단연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일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하기 전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서 기자들의 관심이 예수님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그의 인생이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궁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녀의 첫 등장은 임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리아의 임신 소식은 두 종류로, 하나는 마태복음 기자가,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 기자가 전해주고 있다. 전자는 마리아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으로 묘사하고 대신 요셉에 초점을 두는 반면 후자는 마리아의 담대함과
적극성과 함께 마리아의 진면목을 조금 드러내 주고 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마리아의 임신은 천사에 의해 그녀에게 알려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녀는 이미 요셉과 약혼한 관계이지만 잠자리를
한 사이는 아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가 “은혜를 입은 사람아,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고 일러준다. 천사를 만난 마리아는 무척 놀라면서도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을 눈치 챈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예수)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고 설명해
준다. 마리아는 천사의 다른 설명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마리아를 정말 당혹스럽게 한 것은 자신의 임신 사실이다. 마리아는 자지러지며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천사에게 따지듯 묻는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천사가 일러주는 이스라엘의 통치나 나라의
영원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임신 사실이 그녀를 억누르고 있다. 천사는 마리아를 타이르듯 되묻는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지 않느냐?” 성경에는 많은 말들이 생략되어 있어서인지 마리아는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그 일을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결단하듯 말한다.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 천사님의 말씀대로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천사는 안심한
듯 마리아를 떠난다. 마리아는 이제 천사의 말을 확인하려는지 늙어서 임신한 사가랴-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한다. 이때 그녀가 들려주는 노래(누가
1:46-56)는 마리아의 신앙의 깊이를, 나아가 그녀의 인간 됨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선포하듯 노래하고
있다.

 

그녀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아들의 탄생을 하나님께 찬양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거룩이 온 세대에 미치게 될 것을 깨닫는다.
또한 주님께서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게 될 것을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만국의 왕들을 세상 권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실 것을 그녀는 찬송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실 것이라는
믿음을 마리아는 지니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의 자비와 기억하심으로 이스라엘과 그 자손들을 영원히 돌보실 것이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들의
의미를 성숙한 믿음으로 이렇게 승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몸을 입고 메시아를 잉태한 그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여인이다. 그녀는 그의 아들이
이 땅에서 이룩해야 할 막중한 사명과 역할을 이해하고 담담히 고백한다. 이것은 그녀가 비록 처녀이지만 임신과 아들의 탄생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함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 그녀는 남편 요셉과 예수님의 동생들 틈에서 예수님을 키워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녀가 간직한 하늘의 비밀을 어떻게 간직하며 가정 안에서 풀어낼 수 있었을까? 그 옛날 예수님을 품안에서 키우다 공생애의 길로 떠나보내야
했을 때 그 여인은 그의 빈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마리아는 이렇게 성탄절을 탄생시킨다. 성탄절을 앞둔 이 시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마리아의 아픔과 성숙과 인내의 여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한일장신대 계약교수 채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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