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 선택을 유권자 승리로










제목: 우리 선택을 유권자 승리로

 

매사가 그렇듯 선택에는 가슴이 설렌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바뀌고 세월이 바뀌기 때문이다. 특히 그 선택이 우리 자신과 이웃, 그리고 사회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일 때는 그 선택에 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내일, 우리는 그 선택을 해야 한다. 역대 선거치고 중요치 않은 선거가 없었지만 이번 선택은 다르다. 강요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재의 강요도, 지역감정의 휘둘림도 없다. 내각책임제가 시행된 60년 민의원 선거를 제외하면 48년 정부수립 후 실로 55년만의 일이다.

새로운 정치가 열리는 날, 내일은 보스정치 밀실정치 그리고 한 사람에 의해 전국민이 휘둘리는 그런 시대가 가는 날이다. 3김 시대도 가고 지역감정도
가고,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를 여는 날이다.

누가 그리 해준 게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했다. 근 사십년 독재에 주눅들고 지역감정에 휘둘리고, 그리고 IMF에 직장까지 잃으면서 이제야 정신을 차리게
됐다. 막강한 신문들이 난리를 쳐도 우리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리 쫓아 다녀 봤자 종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탓이다.

그런 깨달음이 우리 선택을 값지게
한다. 정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정치는 정치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대통령도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선택은 의미를 갖게 됐다. 

 

일예일능 기술자가 아니다

 

영영 올 것 갖지 않던 그런 깨달음이
정치를 정치 본디의 자리로 돌리게 했다. 우리 유권자가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했다. 하루, 단 하루만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날을 열게 된다.

그렇게 내일은 새로움으로 시작된다. 시작이다. 끝이 아니다. 내일의 선택을 기점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우리 유권자를 텃밭으로 아는 정치인을 쫓아내야
한다. 내일 대통령선거에서만 그리 할 일이 아니다. 이년 뒤 국회의원선거에서도 그리 해야 한다. 십년 이십년씩 유권자를 제 호주머니 공기돌 쯤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중앙당 눈치나 보고, 패거리를 짓고-, 1년에 너댓번씩 후원회 열어 애꿎은 시의원 도의원만 죽이는 그런 국회의원은 이제 보내야 한다. 지역주민
덕분에 중앙당 뭣을 맡고 뭔 역할을 했다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 호가호위도 이젠 지겹지 않은가. 속지 말아야 한다. 그리 작정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 덕 본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 국회의원이 잘났다고 돈 번 사람 있으면 줄 서 보라. 후원회 열어 모은 돈, 어디 쓰는지 아는 사람 나서
보라.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일 뿐이다. 돈을 많이 쓰지 않도록 감시하는 사람이다. 예산을 삭감하는 사람이지 증액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뿐이다. 그들에게 다른
일을 시켜서는 안된다. 다른 일을 시켰기 때문에 오늘까지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다. 

그들이 내일 선택마저 망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무리 짓고 작당해서 정치를 만사로 만들어선 안된다. 시장 군수, 시의원 도의원 군의원도 마찬가지다.
2년 뒤, 또 2년 뒤 그렇게 4년만 휘둘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접 받을 수 있다.

 

도덕적으로 균형 잡혀야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 주권이란 추상 명사가 아니다. 실천적 의지가 동반될 때,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때 주권자로서
제 위치에 설 수 있다.  

한때 독재와 지역감정이 판을 칠
때는 기권도 주권자의 구체적 실천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선택 함이 옳다. 강요 받지 않는데 선택하지
않음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를 져버린 것이다.

선택함에는 고민도 있다. 어떤 기준, 어떤 잣대로 잴 것인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많은 얘기, 많은 잣대가 있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기능인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예산기술자가 아니다. 법기술자도, 경제기술자도 아니다.

일예일능(一藝一能), 한가지가 능하다 해서 능히 맡겨도 좋을 자리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균형 잡힌 사람이어야 한다. 더 바란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적합한 덕성을 가리면 된다. 일예일능을 재는 방송토론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결국은 거짓말이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굳이 일예일능을 따진다면 자동차세, 통신요금 내려주고 의료보험 혜택을 늘려줄 사람이면 된다. 우리 보통사람들에겐 그것이면 족하다. 그 정도가 대통령 선택의
기준이 된다면 진정 우리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모래 아침 신문에 유권자 혁명, 유권자 승리로 기록되는 그런 선택을 하면 된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