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간직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면 변화시켜야 마땅한 것들도 있다










전원일기 종영의 아쉬움                       정  동 란

세상에는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간직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면 변화시켜야 마땅한 것들도 있다.

MBC-TV의 ‘전원일기’가 22년 2개월 간의 긴 시간을 뒤로하고 오는 12월 29일로 막을 내린다. 아마 TV 드라마 사상 이렇게 긴 세월 방영된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전원일기’가 이렇게 장기간 방영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 시대에 고향의 정취와 점점 핵가족화, 개인화 되어 가는 현실에서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와 공동체의 따뜻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원일기’는 우리 시대 가장 인간적인 아버지 상이라는 김회장(최불암
분)과 이해심 많고 인정 많은 한국의 어머니 상(김혜자 분)을 만들어냈다. 또한 어른들을 모시고 고향을 지키는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우리의 전통적인
효(孝) 사상을 보여주었다. 1980년 10월 첫 방송의 제목이 “박수칠 때 떠나라” (차범석 작, 이연헌 연출)였다. 오는 12월 29일 방송되는 마지막 회 제목은 ‘박수칠 때 떠나려 해도(이은정 김인강, 황은경 작, 권이상 연출)’이라고 한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향을 지키고 땅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전원일기>의 가족들이 박수를 받을 만 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던 ‘전원일기’가 막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률 하락과 소재의 고갈이라고 한다.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의
내용을 변화시키는데 실패했다는 판단이 ‘전원일기’의 종영이유가 된다. 그러나 정말로 좋은 소재 찾기가
어려운 것일까? 소재 운운하는 것은 ‘전원일기’가 갖고 있는 리얼리티를 다루는 방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계속해서 농촌의 현실을 차분하게 그리는 것으로 이 시대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일한 자세이다.


이 시대에 농촌은 도시와 무관할 수 없다. 농촌의 현실은 이 시대의 여러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또한 농촌의 현실은 농촌에서 사는 남성의
현실 일 뿐 아니라 여성의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전원일기’는 거의 남성적 시선에서 바라본 농촌 현실이었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남성의 역할과 여성의 역할을 엄격히 나누어 이를 효도와 예절로 미화시켜 왔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 남성을 대상으로
‘영부인에 가장 어울리는 연예인’을 묻는 인터넷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전원일기’의 맏며느리
고두심씨가 1위로 선정되었다. 특정인들에게 실시한 여론조사를 마치 한국남성들의 여성관인 듯 일반화하여 성적인 이데올로기를
고착화시키는 결혼정보회사의 상업적 의도가 없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의 인물이 젊은 남성들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사실은 ‘전원일기’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대목이다.

‘전원일기’를 여성의 입장에서 소재를 찾는다면 앞으로도 소재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우리네 삶과 동행한 드라마가 극 중 인물을 그려내는데 있어서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인물만을 그린다면 이는 분명
시대에 뒤떨어진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시청자들과 함께 살아 온 드라마가 현실에 뒤떨어진 드라마란 오명과 함께 막을 내린다는 것이 씁쓸하다. 세상의
온갖 변화에 부딪히면서 변화해 가는 인물들을 그려낸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청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드라마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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