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최범서











데스크 칼럼=최범서(수정)

가을 꽃밭에서

새벽녘에 밀치고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 때문에 이불을 끄집어 당긴다. 이불을
덮지 않고서는 시린 어깨를 달랠 길이 없다. 방안에 온기를 채우려고 보일러를 틀기엔 이른 것 같아 스며든
추위를 이불로 달랜다. 추석을 며칠 앞둔 요즘,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써늘하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익어가는 가을을 한 되 주우려고 산을 오른다. 산에 오르는 여기 저기서 코스모스 들국화가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긴다. 봄
꽃이 시든 설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어 반갑다. 비탈길 양지바른 곳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구절초에
더 눈길이 간다. 정갈하게 두른 연보라 꽃 잎과 노란 꽃술의 명암이 극명해 되레 애처롭다. 벌과 나비를 유혹하려 화려하게 몸 치장을 했겠지만 추위에 몸을 숨긴 나비와 벌이 찾아 줄지 조바심이 든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을 정원에 온 듯 하다. 가을엔 코스모스와 들국화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계곡에도 등산길에도 앙증맞은 꽃이 만개해 있다. 봄 꽃처럼 화사하지도 향이 짙지도 않지만 제 이름으로 단장을 하고 가을 볕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가끔은 제 꽃을 찾아 주는 벌과 나비에 갖은 교태를 부리고 어느 꽃 무리는 한 뼘이라도 하늘과 닿고 싶어 키
재기를 벌인다.

논밭 가장 자리에서 ‘산쑥’이 먼저 인사를 한다. 발걸음을 계곡 근처로 옮기니 여름 내내 잡풀처럼
무성하기만 했던 ‘미꾸리 낚시’와 ‘고만이’이가 무리를 지어 제 얼굴 예쁨을 뽐낸다. 고만이 꽃은 마치 연꽃을
연상시킬 정도로 맑다. 고만이 꽃은 바늘 귀 크기 꽃이 많게는 15개정도가
달라붙어 하나의 꽃 모양을 하고 있다. 연꽃처럼 꽃 끝만 연분홍인 것도 있고 전체가 연분홍인 것도 있고
흔하지 않지만 하얀 것도 있다. 계곡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고만이 꽃은 저수지에 피어 있는 연꽃을
보는 즐거움을 안긴다.

한 걸음 더 옮기니 연 보라색으로 치장한 ‘향유’와 ‘꽃
향유’ ‘산 오이풀’ 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개여뀌’도 있다. 가끔 ‘흰 여뀌’도 얼굴을 내밀고 노란 ‘미역취’는 짝을 이뤄 서로 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마타리’는 도도한 자태로 저 홀로 노랗게 서 있다. 보라색을 자랑하고 있는
‘산 박하’가 그 위층에서 작은 몸으로 가을 춤을 춘다. 땅에
딱 달라붙어 수줍음 많은 ‘선이질 풀’도 가을 담기에 한창이다.

산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봄과 여름은 이곳까지 꽃물이 들었는데
지금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그 많던 꽃 다 지고 잎들만 무성하니 봄 꽃에 대한 그리움만 나뭇잎 사이로
여문다. 서운함도 잠시. 하얀 ‘큰
산 꼬리풀’과 ‘궁궁이’가 어서 오라고 손을 내민다. 이들의 반 겨움을 뒤로 하고 정상 부근에 약수터로 발길을 옮긴다. 짙은
녹음 사이로 간간이 색이 바랜 나뭇잎이 노랗고 빨간 꽃잎처럼 보인다. 무릎보다 낮은 곳에 짙은 보라색이
지천이다. 환영(幻影)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물기가 있는 곳을 좋아하는 ‘물봉선’이 큰 무리를 지어 꽃밭을 일구었다. 등산객은 이 높은 곳에 핀 물봉선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깔때기 모양을 한 물봉선은 실 같은 줄기 하나에 꽃을 의지한다. 그리고 몇몇 물봉선은 두 줄기 뿔을 꽃 잎 위쪽으로 말아 올려
신기한 모습을 연출한다. 진 보라색으로 옷을 입은 물봉선도
가을 물들이기 다툼에 여념이 없다.

가을엔 코스모스 들국화 외에 꽃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많다니 꽃을 보지 못한 얕은 눈이 부끄럽다. 아주 작은 꽃들이 활짝 피어 메말라 가는 감성을 다독이니 다행이다. 춘화처럼
잎이 큰 꽃이 없어 아쉬움을 안기지만 찬 바람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으려는 그들의 지혜에 옷깃이 여미어 진다. 쓸쓸한
바람이 불어와 외로움이 도지는 가을이다. 오죽하면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상사화는 서로 등을 대고
무리로 피어 났을까. 가을앓이가 싫거든 창 밖 눈부신 하늘 풍경에 마음을 물들여 보자. 허기진
그리움을 메워줄 들꽃의 지혜로움이 갈바람에 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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