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대곤의 감성오딧세이 – 고향 집 감나무










라대곤의 감성오딧세이 – 고향 집 감나무

 

꿈을 꾸었다. 초가집 뒤쪽 경사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던 대나무 숲이 무성해졌다.
마당 가에 쌓인 짚 볏단과 함께 뒷동산의 맹감나무며 상수리나무까지도 환하게 어우러져 보였다. 요즈음 들어 거의 매일 꾸는 고향집 꿈이다.   

어젯밤에도 우물가에 있는 감나무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꿈을 꿀 때마다 변함 없이
보이는 것이 감나무다. 한데 이상한 것은 어떤 날은 크고 무성한 이파리에 주먹만큼이나 큰 감이 주렁주렁 매달리는가 하면 또 다른 때는 시든 이파리에
풋감 몇 개만 대롱거리는 아주 왜소한 땡감 나무로 변해서 보인다. 매번 보이는 꿈속에서 한번도 감나무가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질 않는 것이다. 

왜 같은 꿈을 자주 꾸는 것일까? 꿈속에 보이는 고향을 떠나온 지가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 그곳에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고 싶은 옛 친구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 연고도 남아 있지도 않은데
요즈음 들어 자꾸 꿈에 보이는 것은 나이 탓에 향수가 깊어지는 모양이다.

한데 이상하게도 꿈을 꾸고 나면 혼란이 온다. 초가집이며 뒷동산의 상수리나무까지는
기억 속에 확실하게 남아있는 것들인데 감나무는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감나무라면 작은 묘목을 하나 얻어다가 심어 놓은 기억뿐인데 엉뚱하게 장대
같은 감나무가 보이는 것이다. 물론 꿈과 현실이 일치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맞추어 본다면 묘목이 키가 커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서 향수가 자라는 동안 감나무도 함께 커졌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꿈속에서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으면 그 날은 무조건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부터 휘파람이라도 불면서 복권도 한 장 사고 싶고 여기저기 쏘다녀도 아무 탈이 없을 것처럼 마음이 가볍다. 반대로 왜소한 땡감나무가 보이는
날은 허리도 움츠러들고 귀가길이 서둘러지고 만다.

처음에는 ‘나이 먹으면서 할 일없는 향수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데 날이 갈수록 꿈으로 점을 치게 되는 일종의 내 무속 신앙이 되어버렸다. 꿈을 꾸지 않으려고 일부러
술을 많이 마시고 곤한 잠을 자고 나면 이번에는 또 다른 허전함이 생긴다. “정말
고향 집에 감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백사(百事)를 접어두고 일어섰다. 마침 가을 따가운 햇볕이 등을 떠밀기도 했다. 

사십 년이나 지난 지금 아직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꿈속에서처럼 정말 감나무가
크게 자랐을까? 아무 소식도 없이 불쑥 찾아온 나를 보고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마을 입구까지 가면서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 딴 것은
내 기우였을 뿐이었다. 텅 빈 것 같은 마을 골목에는 개조차 짖지도 않았고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주춤주춤 옛집 앞으로 다가가다가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말았다. 꿈속에서 보았던
감나무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장대같이 큰 키에 붉게 익어 가는 주먹만큼씩 한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심었던 작은 묘목이 이렇게 많이 자랐단 말인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할머니 한 분이 낯선 방문객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꿈속에 보인 감나무가 사실이다. 나는 서둘러 고향마을을 떠나면서 큰 감나무에 잘 익은 감들을 보았기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날 밤 나는 또 꿈을 꾸었다. 한데 이상하게 낮에 본 감나무가 아니고 땡감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내가 심어놓은 작은 묘목이 장대같이 크게 자란 것을 내 눈으로 직접보고도 현실을 실감하지 못한 것이다. 종국엔 고향을
떠나온 사십 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변화된 나를 찾으려면 고향 집에 자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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