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전북중앙 신춘문예에 투고된 작품수는 390여 편에 이르렀다. 동요에 해당되는 작품은
물론이고 옛 시조형에 가까운 작품까지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투고되었고, 그 소재 또한 일상사의 주변을 다룬 것들로부터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거나
현안의 이슈로 등장한 월드컵과 촛불시위 등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띠었다. 노동자(농어민과 일용노동자)나 특정직종(매춘부)의 삶을 다루거나 특정종교(불교나
기독교)와 관련된 시들도 있으나 대체적인 내용의 흐름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자기성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기성시단의 답습이나
모방에 속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신춘문예 본연의 기능, 즉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도전정신, 그리고 참신하고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드물었다.
이것은 투고작 중의 상당수가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경종호의 ‘분갈이’, 박은수의 ‘디지털 풍경’, 곽의신의 ‘娼5’, 최민영의 ‘꿈을 굽던 노인’, 허민의 ‘石耳
채취꾼 朴씨’, 민예의 ‘내 인생의 #과 b’, 전혁의 ‘시창작을 위한 기초연습 2’를
비롯하여 김인의 ‘뿌리내리는 길’과 이광복의 ‘떨어지는 열매들은 뿌리를 향해 기억을 눕힌다’ 등이 관심이 대상이 되었다. 특히 이광복과 김인의 두 작품은 신인의 수준을 넘어서서 기성시인 이상의 시쓰기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들은 ‘뿌리’라는 소재를 가지고 상이한 방식으로 삶의 근원에 대한 성찰을 시도함으로써 다부지고
진지한 시쓰기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안정적이고 빈틈없는 시쓰기, 평이한 언어, 자신의 삶의 주변으로부터 우러나온
경험의 형상화 등,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난삽한 소재와 어려운 구문을 배제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의 시작방식은, 결코 쉽게
형상화하기 어려운 삶의 근원에 대한 성찰이나 인생살이의 길찾기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시작품 본연의 함축과 암시의 묘미를 살려내야 하는 운문의 특성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이광복의 ‘떨어지는 열매들은
뿌리를 향해 기억을 눕힌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무논에 모내는 일을 통하여 ‘삶의
길’을 유추하면서 그것을 반성하고 통찰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김인의 ‘뿌리내리는 길’은
알맞은 내용을 알맞은 분량으로 압축하는 절제의 미덕이 아쉬웠다. ‘뿌리를 향해 기억을’ 눕히는 열매들의 떨어짐을 통하여 생의 근원을 되돌아보게 만든 이광복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두 편의 당선작을 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접는다.

 

전정구 약력: 1952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및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대한민국 문학상, 풍남 문학상,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했고 평론집 ‘글쓰기의 모험’, ‘약속없는
시대의 글쓰기’, ‘언어의 꿈을 찾아서’가 있다. 전라문화연구소장과
현대문학이론학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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