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애 2 – 방화동의 여름찬가










주말애
2 – 방화동에서의 여름소묘

 

여름이 왔습니다.

큰물이 몇 번 지나갔지요. 큰 붉덩물이 지나갈 때마다 풀들은 흙탕물 속에서 뿌리와 꽃잎 뜯기며 숨막혀 흔들리다가, 물이 지나간 후엔 납작 엎드려 붉은
흙을 피처럼 토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목이 찢어져라 울었을지 모릅니다.

모처럼 장수 ‘방화동(芳花洞)’ 골짜기를 찾았습니다.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요. 계곡에는 흙탕물이 도도하게 흘러가고요, 풀들은 흙탕물
속에서 숨막히게 흔들리고 있더군요. 풀들의 신음소리 때문인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은혜로운 ‘본성’을
베고 눕고만 싶어졌지요. 짧은 시간일망정 ‘본성’이라고
부르는 참된 마음으로 가볼 수 있으니 얼마나 눈물겹고 행복하던지요.

‘방화동’이라니요?

이름으로 보면 앙증맞은 꽃밭을 연상하겠지만, 사실은 사방이 그만그만한 정겨운 산들로
둘러싸인 산골일 뿐이지요. 드높진 않을망정 연접하고 중첩한 산세가 다감하면서도 기품 있습니다. 결코 좁다고 할 수 없는 분지에 자리잡은 휴양지인데,
이름하여 ‘방화동’이라니 그 이름이 품은 뜻 또한 가상합니다.

‘용림교(龍林橋)’에
앉았습니다.

바람개비 모양 산쪽으로는 초월적인 길이 열려있고요, 계곡을 따라서는 세상으로의
길이 오롯이 펼쳐집니다. 두 개의 길 가운데 초로의 그들이 머뭇거리며 앉아있습니다. 장안산에 올랐다 내려왔다는 대전 ‘한가족
산악회’ 회원들이지요. 그들 옆으로 평생 번암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김기현 소장(장수 방화동자연휴양림관리소)과
박판서 계장(장수군 산림축산과)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두 길 사이에 있으니 사랑하는 가족조차 아득해집니다.

그것은 마치 회귀와 유랑, 본성과 욕망의 가운뎃점 같았어요. 오직 시간만이 자유롭게,
천지간 아득하게 갈라져나간 두 길을 유장하게 관통하며 흐르고 있었지요. 이따금 굽잇길에 누군가 나타날 듯해서 미간을 모으고 눈의 초점을 맞춰보곤
합니다. 오는 이는 없는데, 괜히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의 키만 턱없이 길어났습니다.

젊었을 때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서 있는 두 길의 가운뎃점에서 보니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실패’라고 부르는 것들 사이엔 경계와 층하가 없더군요. 그것은 차라리 주입된 ‘가짜
욕망’이 만들어낸 신기루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꽉 찬 산에도 골마다 길이 있겠지요?

장안산의 여름 숲은 부드러운 능선들과 연접하고 중첩되어 그 속이 한층 깊어보입니다. 인적이 드물다 해도 숲과 숲 사이 사람이 오고 간 자취는 분명 있을 겁니다. 이 길을 피해선 작은 풀꽃으로부터 하늘을 뒤덮을
듯 울울창창한 큰 나무들까지 제 몫몫 자라 층하 없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있겠지요. 그렇다 해도 정작 상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이들
역시 때론 실패 때문에 울어야 했을 테니까요.

‘방화동’ 계곡에서 깨닫는 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홀로 만나야 할 것은 ‘시간’ 뿐이며, 그 유장한 시간과 만날 때 그나마 위로가
있다면, 범박하게 말해 ‘사랑’이라고….

 

/글=김영애기자 /사진=김인규기자 /도움=김기현 장수 방화동자연휴양림관리소 소장
/안내=박판서 장구순 산림축산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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