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을 다시 생각하며










<하녀>을
다시 생각하며

 

  예술의 세계에는 두 유형의 에술가가 존재한다.  선배들의 성취를 답습하고 그
무게에 눌려있는 예술가도 있고,  그 성취를 수용 다시 자신의 에너지로 변형시키는 예술가도 있다. 우리는 후자를 작가라고 부른다. 
이들 모두는  예술의 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작품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몇몇 예술가는 이 흐름에서
이탈하여 단절된 모습을 보이고, 그래서 낯선 존재가 된다.  한국영화사에도 시대마다 낯선 감독들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일제 강점기 민족영화를 만든 <아리랑>의 나운규,  반공시대 용공영화 <칠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유신
독재 시대 독재를 은유로 표현한 <바보들의 행진>의 하길종, 장르영화 시대에 장르의 규칙을 무시한 <강원도의 힘>의 홍상수. 


  한국영화의 이런 이단적 계보에서도 가장 낯선 존재는 김기영 감독일 것이다. 
그는 한국영화산업이 걸음마를 시작하는 195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는 멜로나 한국전쟁 직후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들을 제작함으로서 당시의 감독들과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었다.  1960년에 개봉된 <하녀>는 오늘까지의 한국영화 역사
전체를 보아도 자리매김이 쉽지 않은 독특한 영화였고, 김기영 감독 자신에게도 작가적 페르소나를 형성하는 이정표 같은 영화였다. 

  공장의 여공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김선생의 집에 하녀가 들어온다. 그의 집에는 재봉틀
노동으로 이층집을 마련한 알뜰한 아내와 남매가 있다.  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이 친정에 가고 집에 남편과 하녀만 남게된다. 
폭푸우와 번개가 치는 음산한 밤 그는 하녀와 관계를 맺고 이때부터 집안에는 죽음과 공포의 기운이 감돈다.  임신한 아내와 임신한 하녀.
하녀의 가학과 아내의 피학. 아래층에 배치된 가정의 단란함과 위층에 배치된 하녀 방의 욕망.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의 불안한 경사.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마저 포기하는 아내와 남자를 소유하기 위한 하녀의 집착.  엔딩에서 하녀의 요구에 따라 삶을 체념하고 함께 쥐약을
먹은 남자가 아내를 찾아 계단을 내려올 때 그의 다리를 잡고 굴러가듯 내려오는 하녀의 광기.  죽음으로 가득 찬 실내 신에서 카메라가
은근히 빠져나오고,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브레히트적 반전까지...

  <하녀>는 그렇게 60년에 개봉되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작품의 대한
평가는 오래동안 유보되어왔다. <하녀>가 부활하여 걸맞는 대접을 받은 것은 90년대 중반,  공식적으로는 부산 영화제 김기영
회고전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이전에 이미 소수 매니아들이 컬트 목록 속에서 <하녀>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표현주의적
미장센,  가부장과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  한국식 공포영화를 지칭하는 “괴담” 장르의 새로운 개척 등등 <하녀>에
내려진 수많은 평론과 경배.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하녀>는 다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하녀>에 관한 논의는 그것으로 끝난 것인가?

지난 주 학생들과 함께 ‘하녀’를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이제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컬트영화일 수 없음을 함께
공감했다.  히치콕의 ‘사이코’가
그랬던 것처럼, ‘하녀’는 상업영화에서 컬트영화로서의 평가를 극복하고 이제
우리에게 고전 영화가 되었다는 그런 느낌. ‘하녀’는
그런 맥락에서 이제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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