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애 2 – 서동공원엔 무왕이 산다











주말애
2 – 서동공원엔 무왕이 산다

 

익산 ‘서동공원’은
늘 휑뎅그렁하게 빈 듯이 보인다.

4만여 평이라는 적잖은
면적에 키 작은 나무들이 주는 느낌도 그렇거니와, 기계를 통해 듣는 어떤 정보도 없고 들끓는 세상사가 담긴 신문 볼 일 없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세상으로의 정보라인이 막혀 있는 만큼, 내부가 고요히 자신을 향해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음도 물론이다.

뉴스가 차단된 공간에서는 나와 또 다른
내가, 공원 안쪽의 나와 공원 밖의 하늘·바람·구름·풀잎들이 대등한 관계에서 소통된다. 나와 또 다른 내가, 안과
밖이 소통하니 고요한 평화는 절로 찾아올 밖에….

게다가 정자에 올라 큰대 자로 누워보라. 자신의 욕망들이 갑자기 허리띠를 탁 풀어놓은 듯, 이상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언필칭 텅 비어있는 것이 주는 평안과 행복인지도
모른다.

아, ‘무왕(600~641)’이 보인다.

‘서동공원’이니 주인은
마땅히 ‘무왕’일 것이나, 공원의 중심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어 그 위세가 저리 당당한가. 그 뿐 아니다. 말간 햇살이 쫙 펴진 얼굴의 인자하고
너그럽기란‘세종대왕’ 버금간다. 백제 30대, 법왕의 아들이자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은 서양화가 최 웅(2003년 작고)이 그린 서동 영정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금마면’과 ‘무왕’은
뗄레야 뗄 수 없다.

미륵사지는 물론이고, 이미 폐허로 변모해버린 상원사지, 속속 궁궐터로 드러나고 있는 왕궁면, 무왕과 선화비의 무덤이라는 팔봉동 ‘쌍릉’에 이르면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아직 ‘무왕’은 제 그림자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1천4백여년전 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타임머신을 타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드라마 ‘서동요’가 머리 속 가득 펼쳐진다. 드라마의 좋은 점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나, 그 끄트머리를 붙잡고
그 시절로 돌아가보면 현대인의 삶이란 저주에 가깝다.

현대인에겐 그 숭고하다는 ‘사랑’조차 일상화가 가져오는 ‘부식성’을 견뎌내지 못하고 얼마나 빨리 습관화되는가.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천년 넘게 일상화되지
않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은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을 생각하면 마치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이상한 병에 걸린 기분이 들곤 하는
것도 저주의 한가지인 것만 같다. 도무지 일상화되지 않으니 이승의 삶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멈추진 못할 것이다.

‘무왕’이 사는 이곳엔
아무런 소외도 없다.

하등의 경계와 구분이 없기도 마찬가지다. 허나 우리는 그 편리하고 알량한 문명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담을 타인과 쌓고, 사람 사이의 계급을 지어내고, 그것들로
하여 돌이킬 수 없는 소외의 상처를 만들어내는가.

모든 경계와 계급과 소외의 상처들 사이사이엔
좁은 시야로 보면 하늘을 가릴만한 암산들이 가로막혀 있는 것 같지만, 욕망에 억압당한 껍질을 부수고 참된 자아로
보면 지극히 하찮은 것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서동공원은 쓸쓸하게 차 있고 따뜻하게 비어있다.

적멸보궁과 같은 고요가 있고 또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호수도 있다. 뜰 가운데 서보면 햇빛과 대지와 나목들이 경계없이 몸 안으로 들어와 박힌다. 서동공원에선
비어 있어도 빈 것이 아니다.

 

/글=김영애기자 /사진=김인규기자
/도움=임남길 익산시청 홍보담당 /안내=서창식 익산시 금마면사무소 생활복지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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