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익산 금마면 둘러보기










커버스토리 – 익산 금마면 둘러보기

 

익산 금마면은 ‘무왕’을 영원히 유폐시킬 것인가. 발길 닿는 곳마다 백제
30대왕 ‘무왕’의 흔적이 남아있음에도 아직까지 시원스럽게 정체가 규명된 바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금마면을 찾는다면 ‘역사’ 탐색재미에 푹 빠져볼 일이다. 혹 아는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 한 토막이라도 발견해낼 수 있을지…. 그런 기대감인지 아무리 반복해 둘러봐도 발품이 아깝지 않다.

익산 금마면 둘러보기는 임남길 익산시청 홍보담당과 서창식 익산시 금마면사무소 생활복지계장이 나섰다. 임씨는 털털하니 좋고 서씨는 진지함이 그만이다. 이들과 둘러보는 금마면은 즐거움이 풀풀 넘친다.

 

#한반도 형상 빼닮은
저수지

서동공원 서쪽 ‘금마저수지’ 형상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 ‘한반도 지도’와 꼭 닮았다는데 우연치고 아주 묘한 여운을 선물한다. 서
계장은 이를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대번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저수지 역시 낚시꾼들에게 예외일 수
없다. 붕어와 가물치 낚는 손 맛에 사시사철 분주한 편. 특히 작은 물고기가 없다니 직접 손 맛을 즐겨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그 뿐 아니다. 서동공원과 연결되는 ‘자전거 수변도로’를 산책 삼아 걷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익산향교 지키는
6백년된 은행나무

‘익산향교’는 운치는
없으나 규모면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여산·용안·함라 등 네 곳 향교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 향교라면 으레
오래된 은행나무 한그루 만날 수 있듯 이곳도 600년된 은행나무가 객을 반긴다.

기념물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 역사는 1398년(태조 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형문화재 115호로 지정돼 있는 익산향교 대성전이 임란때 소실됐다
1627년 중수됐으니 이 보다 더 오래된 셈이다.

향교를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밭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대목. 서 계장은 담양 못지 않다며 산책로 등을 개설하기 위해 준비중이라고 전한다.

 

#방초만 푸르른 상원사
옛터

용화산 아래 자리한 상원사 역시 ‘무왕’과 유관하다. 그러나 절의 형상은 전혀 찾을 수 없고
기단부 주춧돌만이 그 위용을 대신할 뿐이다. 주춧돌의 크기나 기와와 토기 파편을 보면 이 절의 규모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직도 그 명성 탓인지 사학자나 문화계 관계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으나 발굴작업 등은 요원한 상태. 함께 동행한 양점숙 가람문학회 회장은 이런 무관심으로 인해 결국 우리 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면서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을 주문한다.

 

#동고도리 석불입상의
미학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200여m 떨어져 있는 남녀석상. 금마면 동고도리 ‘석불입상(보물 46호)’의 몸매는 아찔하다(?). 비례의 상큼함이 더할나위
없으니 이기적인 몸매라 못할 리 없다.

무엇보다 머리에 사각의 관을 얹고 있는 얼굴이 인상적. 가늘게 뜬 눈과 뭉툭한
코, 가느다란 입술은 서로 닮아있으면서도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겨준다.

특히 얼굴을 토대로 남녀를 구분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 키워드는 다름아닌
‘수염’이다. 혹 분별이 어렵다면 입구에서 먼 쪽이 ‘남자상’이라는
점을 기억해 둘 일이다.

두 손을 배 앞에 모은 것이나 옷의 문양이 목에서부터 평행선으로 내려온 점은 둘 다 동일. 전문가들은 신체의 표현을 극도로 절제했던 점을 들어 고려시대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석상에 얽힌 전설은 두 가지. 섣달 그믐날 밤 자정 냇물이 꽁꽁 얼면 서로 껴안고 정회를 푼다는 설도 있고, 금마의 지형이 말형상을 닮았고 이를 부리는
마부로 보는 설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지만 이 이야기들은
200m의 거리를 좁혀주고도 남는다.

/김영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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