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대곤의 감성 오딧세이 - 주례사










라대곤의 감성 오딧세이 - 주례사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대성 복덕방이 있다. 박 사장은 나와 죽마고우다.
부동산 경기가 한창 붐이 일어났을 때 돈을 벌었기 때문인지 요즈음처럼 불경기에도 난방비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 친구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해 주었다. 정년퇴직하고 갈 곳 없는 우리들에게는 구세주다. 장기나 바둑 같은 놀이기구도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지만 주로 화투를 친다. 그렇다고
다른 곳처럼 전화비 따위를 뜯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출근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 사는 곳에 오는 사람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 출입을 하려면 엄격한 규약을 통과해야 한다. 낯선 사람은 받아주지 않고 혹여 몇 번 출입을 한 사람이라도 매너가 나쁜 사람은 거절을 한다. 박사장의 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왕따를 시켜서 본인 스스로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예외가 김 교장이다. 모두 좋아  했기 때문에 규약 따위를 계산 해 본적도 없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는 선생은 풍채도 점잖지만 요즈음 말하는 ‘쓰리(THREE) 업(UP)’을 제대로 갖춘 분이었다. 매일 몸을 깨끗이 하고 말을
줄이고 남보다 앞서 돈을 잘 내야 나이 먹은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소위 쓰리 업이라면 선생은 그 표본인 것이다. 비록 자장면이지만 점심때면
생색도 내지 않고 앞장서서 돈을 내고 언제나 정장에 과묵한 선생님이셨다.  

모두 선생을 존경했다. 때문에 아들 결혼식을 치러야 할 박 사장이 당연하다 싶게
주례를 부탁했다. 한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선생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 만 것이다. 생전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은 선생이었다.
더구나 어렵게 부탁을 했는데 한마디로 거절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까지 민망하게 되고 말았다.

무슨 사정이 있는 지는 몰라도 선생이 해도 너무 했다 싶었다. 박사장의 눈치도
있고 해서 다시는 복덕방에 나오지도 못하겠지 했는데 다음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한 얼굴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어색해서
인사하기조차 서먹거렸다. 선생이 눈치를 챘는지 나를 잡아 끌었다. 함께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정을 생각해서 충고라도 해주려고 따라 나섰다.


화낸 이유를 설명을 하리다. 주례 소리에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한 것이었소. 내
평생 딱 한번 했는데 그때 다시는 주례를 서지 않겠다고 맹서를 했던 거요. 설명을 들어보시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얼마 후 동네에 살고 있던
제자 놈 하나가 찾아와 주례를 부탁했었소. 주례는 처음이라 새로 양복까지 한 벌 맞춰 입고 밤잠까지 설치면서 주례사를 연습했지요. 주례사라는 것이
원래 신랑 신부에게 영원히 귀감이 되어야 할게 아니오?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올라갔지만 하객들의 소란스럽고 보니 주례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소. 해서 교단에서의 방법으로 분위기를 갈아 앉히려고 엉뚱한 소리를 했지요. 화투장이 몇 장인지 아십니까? 때아닌 화투장 소리에
당연히 식장은 조용해 졌지요. 됐다 싶어 다음 말을 하려는데 사회를 보는 친구가 메모지 하나를 전해줍디다. 쳐다보았더니 신혼여행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니 주례사를 끝내 달라고 써 있습디다. 순간 당황해서 외우고 연습했던 주례사의 순서를 까먹고 말았소. 엉겁결에 주례사를 끝내고 말았소. 덕분에
주례사는 화투장이 몇 장인지 아십니까. 그뿐이었소. 화투가 몇 장이냐 주례 끝. 그것이 교장까지 한 내가 한 주례사였으니  화가 나지 않겠소. 

듣고 보니 요즈음 황당하고 다급한 결혼식장의 횡포에 편승해서 젊은이들의 무례가 실감되었다. 쓸쓸한 선생의 얼굴을 보면서 복덕방에 있는 친구들을 어떻게 이해 시켜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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