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사극 소재로 장희빈은 잊혀질 만하면 부활하곤 한다










TV사극 소재로 장희빈은 잊혀질 만하면 부활하곤 한다. 요즘도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 KBS 2TV 특별기획 드라마를 통해 장희빈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사극이 방영될 때마다 논란은 늘 따른다. 그 핵심은 거의 예외없이 드라마가
사실에 충실한가, 아니면 왜곡했는가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드라마 '장희빈'을 도마 위에 올려보면, 우선 극의 양대 축인
숙종(전광렬)과 장희빈(김혜수)의 나이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숙종(1661-1720)보다 장희빈(1659-1701)이 두 살 많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장희빈이 연상이라고 느끼는 시청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두 인물의 역을 맡은 연기자들의 실제 나이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궁중 여인들의 암투와 관련해 드라마는 장희빈과 함께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
장렬왕후(1624-1688.강부자)와 숙종의 생모이자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1642-1683.김영애), 숙종 정비로 있다가 장희빈에게 밀려 쫓겨났다가
다시 중전으로 복귀하는 인현왕후(1667-1701.박선영)를 네 축으로 설정하려는 듯하다.

보다시피 인현왕후는 장희빈보다 여덟 살이나 어리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나이 관계를 도통 알 수 없다.

드라마가 언제쯤 조대비를 사망한 것으로 처리해 탈락시킬지 알 수 없으나,
지금 추세대로라면 장희빈이 나중에 경종이 되는 왕자를 낳을 때까지 계속 등장할 듯싶다. 하지만 조대비는 장희빈이 숙종의 총애로 정2품 소의(昭儀)로
승격돼 경종을낳은 숙종 14년(1688) 10월 28일보다 두 달 전인 8월 26일에 사망했다.

조선시대 왕실 친인척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국민대 국사학과 지두환 교수가 최근 펴낸 단행본 「장희빈」(역사문화)은 전문 역사학자가 실증과 고증에 바탕을 두고 쓴 연구성과다. 이 책을 참고해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들의 생몰연대
등 소소하게보이지만 결코 소홀히할 수 없는 대목들을 실제와 비교해가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봄직하다.

드라마를 통해 각인된 가장 주된 장희빈의 상징은 '독기'나 '비운'이라고
하겠는데 이는 역사학자 지두환이 구축한 장희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제 역사학적 상식이 돼가고 있지만, 궁중 나인에 불과한 장희빈이 일약 국모가
된 가장 결정적인 배경은 그 집안의 재력에 있었음을 지 교수 또한 동의한다.

고려 개국공신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 장씨 집안은 장희빈의 조부인
장응인 시대에 와서 가장 유력한 역관(지금의 통역관) 가문으로 부상했다. 장응인 이후 이 가문에서 배출된 역관은 20명이며, 그중 과거시험 역과
수석 합격자가 7명이었다.

인동 장씨 집안은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이러한 재력은
희빈의 세력을 키우고 지탱하는 큰 힘이었다.

지 교수에 따르면 희빈 장씨를 이해하는 데 조대비 집안은 대단히 중요하다.
장희빈의 어머니는 윤씨인데 원래는 조사석이라는 양반의 처갓집 종이었다. 한데 이조사석이 바로 조대비 조카였다.

조사석은 윤씨와 사사로이 정을 통했는데 이런 관계는 윤씨가 출가하고 난 뒤에도 지속됐다고 한다. 이러한 인적 고리를 주목함으로써 지 교수는 희빈 장씨에 대한새로운 주목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 기생 숙정(淑正.하유미)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는허구가
아니라 실제에 바탕을 두었다. 숙정은 장희빈 오빠인 장희재의 부인이었다.

이래저래 장희빈은 비운의 여인이지만 악녀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는 인현왕후가
죽기를 빌었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받았다는 정사 기록과 죽기 직전 어미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아들이자 세자인 경종의 아랫도리를 잡아당겨 성불구자로
만들었다는 야사 기록에 힘입은 바 크다. 250쪽. 8천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