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찰밥인가











웬 찰밥인가?

 

고등학교
시절이다. 동생과 함께 무주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쌀밥은커녕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처지여서 도시락을 싼다는 것이
쉽지 않은 때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음악실로 출근했다. 음악성이 있는 날 보신 음악선생님의 배려가 있어 키를 맡기신 덕분이다. 그 바람에
음악시간도 제대로 없는 학교에서 여러 가곡과 명곡을 나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어디에서 배운 피아노 실력이 아니다. 모태신앙인지라 어려서부터
교회에 출입하면서 풍금으로 배운 실력이다. 그 후에는 교회와 군대의 군인교회에서 반주를 했으니 그리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여튼
음악실에 나 홀로 있으면서 피아노 소리와 노래로 주린 배를 채운다. 지금도 애창하는 ‘솔베이지의 노래’, ‘동심초’,
‘가고파’, ‘메기의 추억’, ‘오 맑은 햇빛’, ‘아 목동아’ 등은 
그때 그 시절의 야릇함을 자아내게 하는 노래들이다. 그런데 음악실을 더 가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이따금씩 찰밥이 배달(?)
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정해진 날도, 정해진 요일도 없다. 며칠 후에 또 오겠다는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 쌓이다 보니 피아노 선율은 점점 더 고조되고, 노래의 성향은 애조를 띠게 되며, 혹시나 엿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더더욱 목청을
가다듬어 부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보낸 3년이 수일처럼 지나갔다. 야곱이 라헬과 연애하더니 7년을 수일처럼 보냈다 했던가? 참으로 감동적인 세월의
흐름이었다.

같은
교회의 친구 여학생이 중학교 다니는 동생을 시켜서 배달된 찰밥이었다. 지금도 그 같은 찰밥을 여전히 먹고 싶은데
이제는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그리고 그 싱그럽고 풋풋한 사랑의 전달은 끼니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는 딱한 처지의 나에게 베푸신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었다. 주님의 따스한 마음이었다. 아니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지대한 관심이었다. 나는 그때 그 시절 그렇게 느꼈던 그 주님의 사랑을
오늘도 우리 교회의 여러 성도들을 통해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찰밥이 허기지고 지친 내 육신의 보양식이 되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이게
웬 찰밥인가? 난 지금도 그 은혜와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분명코 내 형편을 아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이었으리라 난 믿고 있다.

/한성덕 목사<고산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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