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목>











<살며생각하며-목>

물과 삶

                                                     
月岩 이 희 정

 


무더운 여름날 서쪽 행랑채가 마당 한쪽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늘에 놓인 함지박에 물을 채우면 우리 유년시절에는 물장구치는 놀이터가 된다.

그 속에서 동생과 함께 물놀이를 하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몸을 씻어 내리며 불알을 치켜 올려주시던 기억을
지닌 사람은 행복하다.

여름철 우물가에서, 찬물을 끼얹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깔깔대며 도망가던 유년시절이, 어제인 듯 눈에 선하다.

맑게 흘러내린 시냇물에서 미역을 감으며 놀던 소년시절,

피라미 떼의 유영을 보고, 또 다른 삶의 세계를 상상해 보았던 것들은

물로 인해서 만들어진 추억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빈 곳을 채우고, 마른 곳을 찾아 적시어준다.

물은 모든 생명을 탄생시키고 보존해주는 원천적인 존재이며 지구표면의 4분의 3을 덮고 있다. 삼라만상이 겉으로는 서로 다른 독립적인 존재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다 같이 물에 의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물은 인류문명을 탄생시킨 모체인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시작되었고, 중국문명이 황하유역에서 싹텄다.

고구려는 대동강 유역에다 터를 잡았고, 백제는 백마강을 배경으로 건국을
했다.

조선조의 수도 한양은 한강에다 뿌리를 내리고 오늘의 번영된 서울을 이룩했다.

물은 깊고 넓을수록 잔잔하고 조용하다. 마음속에 쌓여있는 욕심을 물속에
버리고 나면, 비워진 가슴에는 시심으로 가득해진다.

물은 자연의 예술작품이며 지구의 생명줄이다. “물”이라는 어휘는 다른 어떤 언어로도 대신할 수 없다. 물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깊은 뜻을 전달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서 이리라

물은 과학 철학 종교의 경계를 넘어 더 원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
깊은 것과 본질적인 것을 전달해주고 더 순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물은 사색, 명상, 그리고 미학적 경험의 대상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물가를 거닐면서 사색을 하고, 물가에 자리 잡은
정자를 찾아서 명상을 한다.

때로는 물줄기를 타고 멀리 바다로 흘러가서

수평선을 물들이며 기우는 붉은 태양을 보고 싶고, 물 위를 여유롭게
날고 있는 갈매기가 보고 싶어 지기도하며, 멀리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무인도를 걸어보고 싶을
때도 있다.

고향은 떠나온 곳이기에 그리움의 대상이다.

옛 살던 집에 잠시라도 돌아가서 내 어릴 적 추억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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