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난 지 벌써 일주일 째다.

기쁨과 낙망 등 승·패자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고는 하지만 고소 고발 등 후유증이 적지 않다.

그에 따른 원한, 미움등이 계속 뒤를 잇고 있어 조금은 뒤숭숭하기까지 하다.

새삼 새 당선자들의 역할을 주문하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어쨌든 다시한번 충심으로 공개적인 축하를 보내며, 전북발전이 그들에게 담보돼 있고 그들의 성공이곧 ‘전북의 성공’이기에 부득불 대화합을 이뤄달라는 충언(忠言)을 덧붙인다.

이번 당선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승리의 뒤편에 패배의 상대를 안고 있다.

사실상 적(敵)이었고, 지금도 적인 상태로 남아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을 끌어안지 않고선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그들에게 달려갈 수는 없다.

패배감에 굴욕감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승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대개 셋 중 하나다.

이들을 끌어안든지, 아니면 끝까지 적으로 간주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든지 셋 중 하나다.

그러나 동서고금 현명한 지도자는 최소한 상대를 끌어안는 모양이라도 취했다.

화합만이 언제나 성공지속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화합은 아량을 전제로 한다.

옛글에, 태산 불양토양고능성기대, 하해 불택세류 고능취기심(泰山 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 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 했다.

태산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큼을 이룰 수 있었고, 황하와바다는 작은 물줄기조차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인포용력을 강조한 가르침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행태가 말 그대로 너죽고 나살기식이 돼 원한까지 축적된 상태다.

지역발전의 기본조건인 지역화합을 위해서라도 승자의 아량이 절대 필요한 시기다.

또 사실 상대를 끌어안는 아량을 보이지 않는 승자는 승자의 자격이 없을뿐더러 미래가 없다고 확신한다.

아무튼 화합이 절실할 때이며 그 화합을 사실상 주도할 수 있는 자는 승자들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전북중앙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