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서만 발견되는 암각화가 왜 남원에 있는 것일까? 실제 남원 대곡리 암각화는 검파형으로 호남지역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조차 명확한 답변을 꺼리는 상황. 이런 시점에 ‘암각화’의 다양성을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한국암각화학회(회장 장명수)와 남원문화원(원장 이병채)은 14일 남원문화원에서 ‘한국 암각화의 다양성과 새 지평’이라는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남원 대곡리 암각화의 계통과 형성배경(송화섭 전주대교수)=송화섭 교수가 추정하는 남원 대산면 대곡리 봉황대 근처에 있는 ‘암각화’의 제작시기는 청동기무렵. 경북 홍해 칠포리, 영주 가흥동, 고령 양전동, 안림장터, 영천 봉수리 등과 동일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송 교수는 이어 “이들 암각화의 심볼문양을 검파형으로 이름붙인 바 있다”면서 “고인돌 출토품인 마제석검 손잡이에서 파생된 기하문양”이라고 덧붙인다.

이를 토대로 송 교수가 꼽는 암각화의 주인공은 풍요다산의 여신이었던 ‘지모신(地母神)’. 검파형은 여성상을 모방 묘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철기시대 지리산권의 여신사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송 교수가 지칭하는 것은 지리산권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 ‘독특한 여성신’. 경주권의 삼산여신과 선도산 신모신앙이 지리산으로 이식됐고, 대곡리 암각화는 그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계룡산 갑사 간성장 계곡의 명문 윷판암각화 연구(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김일권 연구원이 간성장 계곡을 주목한 것은 윷놀이판 홈에 글자를 새겼다는 점. 이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암각화라고 소개한다.

전국에 산재한 윷놀이판 암각화는 41개소에 135점. 대부분 지름 1~3㎝ 가량의 작은 홈 29개로 구성돼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김 연구원은 “이들 명문에는 ‘간(艮)’이라는 키워드가 세 번이나 반복되는데, 이는 작자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제시대 민족 부흥을 꿈꾸는 절의사상으로 글자를 새겼을 법 하다”고 추정한다.

김 연구원은 “정읍 두승산 망화대 바위에 새겨진 윷판그림과 사상적 분위기가 흡사하다”면서 “동일한 시대배경을 갖고 제작된 것 같다”고 분석한다.

특히 김 연구원은 두승산 주변 5언절구 글이 구한말 도학자로 유명한 간재 전우(1841~1922) 선생의 것으로 판독됐다면서 간성장 계곡 명문에 새겨진 ‘간옹(艮翁)’도 간재 선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한다.

  ◇고려 만월대 출토 참고누판 연구(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말밭 위에 각자 말을 가지고 노는 판놀이의 일종인 ‘고누’. 장장식 연구관은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참고누판’을 계기로 단순 놀이용이 아닌 종교적 의례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일단 그는 개성 만월대에서 추출된 ‘전돌’의 독특한 형태를 주목한다.

현행 참고누판과 달리 4개 사각형으로 구성돼 있어 놀이말 수가 현행의 2배인 48개라는 것. 바빌론 기호를 참고할 때 이는 참고누의 다른 형태라기 보다 나름의 문화사적 맥락을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장 연구원은 이어 “의례건축물의 평면도와 닮았다는 점에서도 건축의례와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일본 중국 몽골 네팔 등 다른 나라와의 비교연구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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