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9개짜리 선물상자를 받았을 때 좋은 것부터 먹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거꾸로 일부러 좋은 것을 아끼고 나쁜 것부터 골라먹는 사람도 있다. 결국 전자는 좋은 것만 먹게 되는 것이고, 후자는 나쁜 것만 먹게 되는 것이다.

먹는 것만 그런 게 아니다. 입는 옷 역시 새로 사는 족족 그냥 입어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까워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장롱 깊숙이 넣어두고 음미만 하는 사람이 있다. 신발도 사면 막 신는 사람이 있고 그저 아까워 신발장에 고이고이 모셔두는 사람이 있다. 막 입고 신는 사람들은 언제나 유행에 맞춰 그때그때 좋은 옷 좋은 신발 신으며 제대로 살게 되는 셈이지만, 그냥 아까워 간직만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구식 옷이나 유행지난 신발만 신고 살게끔 돼 있다. 더욱이 요즘처럼 유행 간격이 짧은 시대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어떤 때는 그것이 지나쳐 때로는 곰팡이가 난다거나 유명을 달리하거나 불구가 돼 입거나 신지도 못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다.

자, 이 정도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생활태도인가는 금세 답이 나온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먹을 때는 좋은 것부터 골라먹고, 옷이나 신발을 사면 그때그때 아끼지 말고 입고 시는 게 지혜롭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더욱이 지금은 예전과 달리 무조건적인 절약 보다는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시대라는 점에서 비교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인생의 원리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길게 보면 후자, 즉 나쁜 것부터 먼저 먹고 옷이나 신발을 사면 그저 아끼느라고 제대로 입지도 신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훗날 더 잘 살고 안정돼 있더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비록 멍청하고 둔하고 우매하게 보일지라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앞날에 대한 대비’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래도 흔들림 없는 자기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들의 삶 양태가 때론 궁색하고 쪼잔하며 시장경제적인 자본주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서 무조건 본받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물건 소중한 줄 알고 오늘 보다는 내일을 더 생각하고 염려하는 그 생활태도 만큼은 본받을 필요가 있을 듯싶다. 어쨌든 성공한 사람들은 오늘보다는 내일에 비중을 둔다는 점을 유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북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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