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구 사회교육부장
   우주에는 억수같이 많은 별이 있습니다.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비’처럼 많다는 뜻입니다. 과학자들조차 그동안 10억개 이상으로 어림잡았으나 갈수록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별의 숫자를 파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할 일이지만 일부에서는 100억개가 넘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 지구처럼 문명화된 생명체가 존재하는 별은 겨우 10여개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후하게 잡아서 그렇답니다. 1억분의 1이나 10억분의 1의 확률이란 게 존재를 의미하는 걸까. 이 영(零)에 가까운 확률을 한번 풀어 봅니다.
 
외부 생명체 가능성 거의‘0’

   우리의 오류는 ‘공간’으로만 판단하려 하는 데 있답니다. 공간보다 중요한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보된 생명체가 머무는 시간이 많다면 존재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진보된 문명은 이미 종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천체 과학자들은 우주의 탄생을 120억년에서 200억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빅-뱅’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주시계의 초침이 움직입니다. 그 대폭발속에서 지구가 탄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6억년전. 우주시계로 9시쯤입니다.

  ‘카오스’ 상태의 지구가 40억년에 걸쳐 안정되면서 6억년쯤 전에 원시 생명체의 박동이 시작됩니다. 박테리아가 생겨나고, 아메바와 짚신벌레 등 단세포생물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공룡은 누가 뭐래도 지구의 주인격입니다. 그 위대(衛大)하고 위대(胃大)한 동물이 지구에 나타난 지가 2억2천만년전. 공룡은 1억6천만년이라는 장엄한 기간 동안 지구를 지배하며 번성하다가 지금으로부터 6천만년전 어느날 홀연 세상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라마피데쿠스, 오레오피데쿠스라 불리던 영장류가 두 발로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 1천500만년전. 1천만년이 지나 영장류의 직립-두발서기가 확실해집니다. 네발짐승이 두발로 서는 데 자그마치 1천만년이 걸린 셈입니다. 두발로 서는 영장류의 이름은 오스트랄로피데쿠스.

  직립은 문명의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현생 인류 탄생과 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직립이 시작되면서 가장 원초적인 표현 수단인 성기(性器)가 숨게 되고, 이에 따라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찾게 됩니다. 이는 먼 훗날 언어와 문자를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비교적 우리 귀에 익숙한 북경원인이 50만년전에 출현했습니다. 이들은 불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나타난 게 15만년전. 현생인류라고 분류되는 크로마뇽인의 시대는 불과 5만년전입니다. 이 때가 우주시계로 11시59분59초쯤. 인간의 현재 뇌용량은 이미 그 시절에 굳어진 것입니다. 

  영장류로서의 인간 형상이 만들어진 게 그 정도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던 시간은 불과 수천년에 불과합니다. 돌도끼를 버리고 청동기를 사용한 것이 불과 6천여년전입니다.

  이탈리아의 의사 갈바니가 전기를 연구한 것이 230년전인 1770년. 이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함으로써 전기를 실용화하게 되는 데는 100년이 걸렸습니다. 소련이 미지의 우주를 향해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게 1957년입니다.

  지구에 생명의 맥박이 시작된 뒤 6억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문명을 이룬 것은 근대200-300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지만 이 급격한 흐름이 우리를 파국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불안감 또한 상존하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기막힌 인연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인연(因緣)입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연으로 만난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인연이 너무 깊어 장황하게 말한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500생의 연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 인연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더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간에 국한하지 말고 시간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우리의 인연이 깊다는 것을 깨치게 됩니다. 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무한 우주(宇宙) 속에서,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공유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인연은 500생이 아니라 500겁의 인연도 뛰어 넘는다는 말입니다.

  나와 같은 시공간에, 그 짧은 시간을 함께 하는 모두는 참으로 귀한 인연입니다. 우주의 무한 시공을 초월해 ‘찰나’에 만난 기막힌 인연입니다. 헐뜯고 싸우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인연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강찬구 사회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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