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도 입추도 지났으나 늦더위 기승은 여전하다.

이 무렵 더위를 식히기에 좋은 시집 두 권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익산에서 활동하는 편덕환 시인이 오랜만에 ‘빨간 연꽃(화서 刊)’을 내놓았고, 진안이 주거지인 김사강 시인은 ‘산다는 거(신아출판사 刊)’를 펴냈다.

이들 시편은 서정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지향이 같으나 편씨는 소년 같은 담백한 필치로, 김씨는 질박한 향기가 풀풀 넘쳐 색채가 영 딴판이다.

두 편의 시집과 함께 가을마중을 떠나는 것도 재미지다.

  #빨간 연꽃의 역설(?) “섣달 그믐 밤/ 책상 위에 촛불 하나 켜놓고/ 하루 겪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보았다.

/ 매화주 한 병 붉게 익어갔다.

/ 내 주먹 같은 환등은 밝게 부풀고/ 내 얼굴은 자꾸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편덕환 시인의 ‘매화’) 매화주 한 병 익어가다니? 시인은 섣달 그믐밤 매화주 한 병 곁에 두고, 한잔 두잔 마시면서 일기라도 썼던 것인가. 얼굴이 자꾸 붉어졌다니 십중팔구 그랬을 것이다.

이처럼 편 시인의 시들은 쉬우면서도 형상화가 뛰어나다.

마치 고향집 뒤꼍 대숲에서 새떼들이 튕겨 오르듯 자글자글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묘미에 빠져들지 않을 이가 별로 없다.

무엇보다 내면을 익명화하기 보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어놓는다는 점이 인상적. 누구라도 화자와 이내 동일시되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독자들도 기꺼이 매화주 한 병을 함께 마셔주는 것이다.

해질 무렵이면 수군거리며 숲 속으로 돌아오는 새떼들…, 초저녁 별들이 동네마다 켜놓은 등…, 지난 여름 달맞이꽃이 노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서있던 낮은 담장 등등 소년 같은 천진한 힘이 행간마다 넘쳐난다.

편 시인의 시편들은 그리움을, 그것도 즐겁게 곱씹는 즐거움이 있다.

논산에서 태어난 시인은 원광고와 원광대를 나왔으며 계간 ‘문학과 의식’에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우체통 위에도 눈이 내렸다’와 ‘감나무 베어지는 날’ 등이 있다.

  #산다는 것에 대한 ‘성찰’ “산다는 거/ 물 흐르는 거 따라하는 거 아니냐/ 더러는 흐르다가도/ 빈 웅덩이가 있으면 그마저 다 채우고 흐르는 거/ …지금 나뭇가지에는 바람이 불고/ 잎새는 가벼워진 몸을 흘려 보내고 있지 않느냐/ 나도 그만치만 살다 갈란다.

” (김사강 시인의 ‘산다는 거’중 일부) 시인에게 사는 일은 고단한지도 모른다.

아내한테 늘 사랑의 빚을 지는 것도 미안하고, 돈 버는 재주없는데다 시 나부랭이나 쓰면서 염치 불구하는 자격지심이 내심 그를 쓸쓸하게 할 것이다.

시인은 “시란 밥 먹고 배설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숨 쉬는 것도 시고, 존재도 비존재·유무도 다 시라고, 시 아닌 것이 없는 셈”이라고 애써 삶과의 괴리를 눙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늘그막에 거리를 보란듯이 젊은애들 사랑하드키 두손 꼭 잡고 거리를 활보하자고 능청을 떤다.

답답한 노동자의 삶과 시인 사이에서 국화꽃이 피려나 보다고 ‘가을 국화’를 노래하기도 한다.

그의 시편들은 때로 술 냄새 풀풀 풍기고 때론 비척비척 힘들게 걸어간다.

그럼에도 이에 그치지 않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짐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김 시인의 힘이다.

진안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계간 ‘시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들어섰으며 시집으로는 ‘겨울 민들레’를 비롯 ‘바람이 내게 말하는 것은’ ‘다시 내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등이 나와 있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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