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3절에 보면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첫째는 진정 복된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둘째 그렇다면 누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는 ‘가난하다’는 것이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인가? 헬라어에는 ‘가난하다’는 말이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페네스(penes)’라는 말인데, ‘수입이 적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뜻이다. 또한 ‘프토코스(ptochos)’라는 말은 ‘진실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극빈의 상태’를 가리킨다. 본문에 쓰인 ‘가난하다’는 말은 이 ‘프토코스’라는 말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치 극빈의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이 자기를 품꾼으로 써주는 주인의 자비와 긍휼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무능력과 죄성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만을 전적으로 기대하고 의존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리킨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온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었고 부자는 믿지 않았다거나, 나사로는 선한 삶을 살았는데 부자는 악한 삶을 살았다는 말씀이 없는데, 왜 부자는 죽어서 지옥을 가고,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을 간 것일까? 부자는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바라고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절히 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피조물로서, 그리고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부족하고 죄악 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로 깨닫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새해 우리 모두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소망하는 그리하여 천국을 소유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말씀: 마태복음 5:1~12                                            
찬송: 516장(새 427장)
/전주 중부교회 박종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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