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의 잡기노트 <124>김인식(62) 덕분에 추신수(27)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는 알아보게 됐다.

이치로(36)가 ‘구치(口) 펀치’를 날리고, 플란더스의 ‘파트라슈’와 딴판으로 다르빗슈(23)가 사납게 굴든 말든 김인식의 조용한 아우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김인식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만사형통이었다.

어른 말을 들어 손해볼 것 없다는 진리는 정면승부를 실천한 풍운아 임창용(33)이 대신 전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히딩크(63)가 김병지(39)를 외면했듯, 김인식은 김병현(30)을 끊었다.

휘하로 들어온 아롱이다롱이 병사들 만큼은 끔찍이도 감싸고 돌았다.

생긴 것도 안중근 의사를 닮은 듯한 봉중근(29), 콧수염을 길러도 정겨울 수 있는 날쌘돌이 이용규(24), 만화에 나오는 홈런왕 4번 타자 이미지 그대로라 더욱 반가운 김태균(27), 덩치 큰 소년같은 동안의 거포 이범호(28)…. 전원 메이저 리그로 보내고픈 강철어깨 28명을 구경시켜준 김인식이 고맙다.

‘장자연 리스트’가 이렇고, 가수 비(27)의 하와이 재판이 저렇고 따위의 이기나 탐욕과는 하등 무관한 면면이다.

야구의 할리우드에서 펄펄 날아야 마땅한 청년들이다.

7년 전 월드컵 16강전에서 히딩크는 홍명보(41), 김남일(32), 김태영(39)을 빼고 차두리(29), 이천수(28), 황선홍(41)을 넣어 성공했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라운드를 정리한 김인식도 마찬가지다.

교체 타이밍은 주효했고, 새로 들어간 선수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켜보는 국민이 다들 수긍했다.

김인식은 떠벌리지 않았다.

립서비스와도 거리가 멀었다.

투명하고 상식적인 언동으로 일관했다.

“야구는 흐름을 타는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이 흐름을 잘 탄 것 같다”, “미국과 일본 중 누가 올라오고, 그거보다는 두 팀이 투수들을 많이 소비하고 올라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솔직할 수는 없다.

드러난 김인식의 성품은 매력적이다.

덕과 정직, 의리는 누구에게나 선망이다.

여기에 그의 외모가 섞이면 호감은 배가된다.

햇볕과 바람에 시달린 불콰한 포커 페이스는 야전군 사령관같다.

사계 고수의 무심한 듯한 낯빛이다.

배문고 시절, 동네 불량배를 홀로 제압하고 병역도 해병대에서 필했다는 사실 또한 리더 김인식의 강력한 성가에 보탬이 된다.

26세 때 어깨를 다쳐 선수생활을 접은 동병상련의 발로인지, 박철순(53)과 조성민(36) 등을 부활시키며 재활전문 지도자로 인정받았다는 점도 존경심을 더욱 굳건히 만드는 미담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시험도 잘본다는 뻔한 소리도 김인식의 어진 눈과 근엄한 얼굴을 거치면 금과옥조가 된다.

여느 프로팀 감독들이 대표팀을 안 맡겠다고 빼자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는 것 아니냐. 팬이 있어야 감독도 있고”라고 투덜거리듯 말했다.

소집한 대원들을 하와이에 모아 놓고는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회에 임해라”고 심드렁한 듯 단호하게 다짐받았다.

이들 당연한 발언에 감격하지 않는다면, 한국인이 아닐 것이다.

김인식은 성북구 동소문동 태생 서울 토박이다.

발음과 억양에 서울 사투리가 녹아들어 있다.

부드러우면서 다소 어눌한 김인식의 서울 말씨는 듣는 이를 방심시키고 경계심를 푼다.

현장은 말단들이 뛴다.

높은 사람은 대개 책상, 김인식의 경우 더그아웃을 지키고 앉아 있다.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병졸들보다는 장군을 중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번 WBC에서 김인식이 입증했다.

‘장수가 명령 한 마디 잘못하면 군대는 파멸하고 제 몸도 잃는다’(여씨춘추)는 금언을 새삼 확인했다.

단기전에서 성과를 따냈을 뿐이라는 헛소리는 자기비하다.

올림픽, 월드컵, 그리고 김연아(19)도 짧은 기간 내 승부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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