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순수해지고 맑아진다.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실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깊고 아득한 다른 세상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도 꽃의 모습이다. 그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면 꽂은 눈을 흐리고 저만치 달아나서 어느새 진실을 감추어버린다. 꽃의 실체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허망한 일은 없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꽃 앞에서 노래를 하고 시를 짓고 글을 쓴다. 그 실체가 궁금할수록 더욱 다가가서 꽃의 빛깔과 향기와는 무관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일까, 고금을 통한 우리 문학에서 꽃만큼 추상화되고 상징화된 사물도 드므리라.

 꽃의 상징적 의미로 쓰이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다. 많은 노래에서 그리고 글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꽃으로 상징하고 있다.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애정의 방식이다. 물이 우리 몸의 생성을 위한 구성요소라면 사랑은 우리의 정신의 아름다움을 위한 정서적 요소이다. 이처럼 가장 흔하면서도 귀중한 사랑의 의미를 꽃에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은 가까이에서 꽃으로 형상화된 사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꽃에서의 아름다운 시기는 개화기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개화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그 화려함과 향기로움으로 눈멀고 귀먹어 사람들은 사랑의 기쁨을 얻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꽃이 피어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는 꽃을 보며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며 바람을 탓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리라. 그래서 일까, 사람들은 꽃의 또 다른 의미를 이별에서 찾는다.

 매창의 '이화우'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그리고 이형기의 '낙화'에서 우리는 꽃이 상징하고 있는 이별을 볼 수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허다한 문사들 중에서도 만나는 기쁨보다는 헤어지는 아픔을 지는 꽃으로 나타내고 있다.

  '꽃 피자 어디선가 바람 불어와' 이 시는 이건창이 중종반정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지은 서사시이다. 시적 화자는 중종의 비였던 신씨(愼氏)이다. 그녀는 사랑했던 남편이 보위에 오르자 중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폐비가 되어 궁중에서 쫓겨나게 된다. 자기 아버지 신수근이 임사홍과 함께 연산군의 측근으로 몰려 반정 거사에서 참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임금이 되자 오히려 내몰리게 되는 시적화자의 참담함 심정을 '꽃 피자 어디선가 바람 불어와' 라는 시로 절실하게 나타낸 것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의 여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 자살을 하였다. 매스컴에서는 매일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내보냈다. 많은 세인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렸다. 그러나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실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자살한 사람이 꽃같이 어여쁜 탤런트라는 점만으로도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웃고 있는 그녀의 영정사진과 불타다만 유서가 지금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녀에게도 꽃피자 어디서 바람이 불어온 것일까? 그 드라마가 뜨면서 그녀는 자살을 하였다. 피어나는 꽃을 떨어지게 하는 바람은 어디서 불어온 것일까? 요즈음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자살이 빈번하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지만, 열흘도 못 피고 지는 꽃들이 너무도 안타깝다. 지금 산과 들, 여기저기에서 꽃들이 피고 있다. 꽃피는 계절에 너무도 쉽게 떨어지는 꽃을 보며 꽃 앞에서 침묵에 잠긴다.
/정군수 전주문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