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으로 불리는 단테의 작품을 소설로 만든 책을 읽어보았다.

그가 당대의 시각으로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묘사한 것인데, 성경적이지는 않지만 그 시대의 정신을 담은 걸작으로 충분하다.

나는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다양한 성경의 묘사 중에서 나의 삶에서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림이 있다.

천국은 기쁨이 있는 곳이고, 지옥은 아버지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도 그런 체험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기쁨을 누리고 살려한다.

우리가 그 기쁨을 어디서 찾으려는가가 문제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정해진 틀 밖에서 기쁨을 찾으려 한다.

틀 안에는 기쁨이 없다고 믿고, 정해진 틀 안에서 사는 것은 재미가 없는 따분함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일탈을 꿈꾼다.

막연하게 밖에 기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정을 벗어나서 기쁨을 맛보려고 탈선을 한다.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고, 내 집을 떠난 제3의 장소에서 은밀함을 맛보려고 한다.

매달 받는 일정한 월급 밖의 수입에 관심을 갖는다.

일정한 수입은 별로 재미가 없다.

과외의 돈이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가? 생각지 않는 부수입으로 우리는 또 다른 일탈의 즐거움을 꾀한다.

그러면 과연 틀 밖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나는 오히려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진정한 재미와 기쁨이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나서 기쁨을 찾으려 했던 둘째 아들의 어리석음을 우리가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는데 모두가 막다른 골목까지 가보려고 한다.

아버지가 하라고 한 일을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진정한 기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주어진 것들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있다.

어머니가 맛있는 성찬을 정성스럽게 차려놓았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건강에 그렇게 좋지도 않은 라면을 끊여먹거나 햄버거를 사먹는 자녀와 같다.

딸 아이의 결혼을 앞두고 준비하는 아내와 보내는 딸과 새롭게 맞아들이는 사위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진정한 즐거움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괜히 밖을 기웃대지 말자.   

 /조성천목사(이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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