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희 함열고 교감

진부한 선생님 냄새를 파격적으로 벗어버리는 방법으로 크게 교육 효과를 올렸던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정말 운(?)이 없게도 말썽꾸러기 악당들이라고 할 만한 녀석들이 자그마치 학급의 3분의 1 수준을 넘어 서고 있었다. 과연 문제 학급으로 지목되었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학기 초부터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져 담임인 나의 학급 생활지도 역량을 시험하곤 했다. 

 자유와 방종을 선물하다

내가 학생들에게 지쳐갈 무렵 나는 비장의 카드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실장을 불러서 다가오는 연휴에 계곡을 찾아 야영을 갈 희망자를 모아 보도록 제안했다. 가능하면 내 염두에 자리 잡은 말썽꾸러기 녀석들은 반드시 참석할 수 있도록 설득해 보라고 부탁도 했다. 예상했던 학급 야영 팀이 꾸려졌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나는 곧바로 학생들에게 “지금부터 선생님은 여기에안 계신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너희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꾸밈없이 보여 주기 바란다.”고 선언했다. 긴장과 허물을 풀어주기 위해 미리 준비해 간 술 한 잔씩을 돌려가며 따라 주었다.

그들에게 자유와 방종의 선물을 안겨준 효과는 다음날 아침 곧바로 나타났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놓아 둔 담배 갑이 홀쭉하게 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는 아예 나하고 친구하자고 덤벼드는 모양새였다. 혹시 내가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너무 방탕의 늪으로까지 몰아간 것은 아닌 지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학교에 되돌아 왔을 때,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비교육적 방식의 교육효과가 엉뚱한데서 나타난 것이다. 그 학교는 축구를 육성 종목으로 지정하고 있었고 축구부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서 재학생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편이었다. 마침 라이벌 학교와 경기가 예정되자 학생들은 학교에 응원참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인문계 학교인 특성상 입시공부를 뒤로하고 학생들을 단체로 축구 응원에 동원하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학교장의 대단한 모험적 용기가 필요했다. 당연히 교장은 난색을 표했다.

학생들은 막무가내로 참가를 고집하다가 급기야는 주동자 그룹의 신호에 맞춰서 전교생이 축구부 응원전 참가를 요구하는 불법 집단행위를 치밀하게 준비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타종이 울렸고 모든 학생들이 일거에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가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우리 학급아이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교실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담임으로서 쉽게 이해되지 않아 실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지난번 야영팀에 동행했던 힘깨나 쓰는 녀석들이 나서서 “우리 반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사전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나가서는 안 된다”고 만류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눈물이 나오도록 찐한 감동이 가슴에 꽉 차 올라 왔다.

 찐한 감동으로 가슴 벅차

나는 표 내지 않고 제법 의연한 목청으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너희들의 행동은 담임인 나로서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너희들은 지금 이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있어야 했다. 동료들을 배신하느니 차라리 선생님을 배신했어야 했어!” 그렇게 말하고 나오면서도 내 속마음으로는 깨물어 주고 싶도록 그들이 예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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