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순 도의원
  지난 주 금요일 저녁 민족의 통일을 위해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며 열정적인 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과 의지를 곳 세운 채 세상과 일말의 타협을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념과 통일정책에 대한 재 고찰을 하게끔 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가 남긴 유서에서처럼 현 정권과의 대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다시 한번 이 사회가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는 불안감도 큰 것은 사실이다.

 열정적 삶의 인물 목숨 끊어

  벌써 20여일이 다 되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번뇌와 고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삶을 마감해 많은 국민들은 슬픔에 젖어있다.

  그 국민들의 끝없는 국화 행렬과 가족 그리고 국민들의 오열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치유되지 못한 채 가슴에 응어리로 남을 것인지 예상할 수도 없다.

  이념과 이념의 투쟁, 그 이면에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향한 수 많은 집단들의 싸움들.

  현 정권과 이에 맞서는 국민과 시민들은 상생과 공존이라는 대 명제를 지향하면서도 이를 실천하는데 너무도 인색하다. 그래서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해 관용과 용인, 자유의지라는 화두를 던지고 싶다.

  흔히 말하는 ‘똘레랑스’를 말이다.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10여년간 돌아오지 못한 ‘홍세화’씨가 ‘나는 빠리의 운전사’라는 책을 통해 알려준 단어가 바로 ‘똘레랑스’다.

  이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다.

  상대의 정치적 의견과 사상, 상대의 이념 등을 존중함으로서 자신의 사상과 이념도 인정 받는 다는 것으로 나와 남 사이의 관계 또는 다수와 소수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 남을 동시에 존중하고 포용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의 의미는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로서 ’권력에 대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
 
  즉 ‘권리는 아니지만 금지되는 것도 아닌 한계 자유’를 의미한다.

  가장 많은 예로 상용되는 것이 프랑스인들은 거리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지만 “그래야 청소부들이 실업자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똘레랑스가 건전하게 존재하는 사회라면 분명 이념의 사수를 위해서라든지 상대방에게 어필하기 위해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은 조심스러워 질 것이라 본다.

  서로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돼 끊임 없는 투쟁이 반복되는 사회는 실질적인 이해 자체가 불가능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사실은 뒤로 한 채 가슴에 응어리 진 불만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홍세화씨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개정판에서 다시 “‘똘레랑스’는 관용이라기보다 용인(容忍)이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다시 전한다.

  다시 말해 힘있는 자에게 베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의 위에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역사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는 투쟁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닌 우리 삶의 태도이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현실사회에서 영원히 요구되는 나 자신과 모두를 위한 배려인 셈이다.

 국민에게 신뢰얻는 정부돼야

  물론 투쟁이 더 쉬울 수 있다.

  배려를 갖는다는 것과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는 태도와 사상에 대해 관용을 베풀거나 용인을 하는 것 보다 싸우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르고 속 편할 수 있다.

  정권이 가지고 있는 정책의 신뢰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정부의 잘못이다.

  신뢰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정권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나 다그치려고만 하지 말자. 지적은 하지만 너무 몰아세우지만은 말자.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볼테르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말의 의미를 곰곰이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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