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기 태전라북도전주교육청 교육장

   많은 저술가들이 자주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라 진평왕 때의 일이다. 원효가 자기의 스승인 대안대사를 만나러 갔는데, 그때 대안대사는 수행 중인 토굴 속에서 어미를 잃어버린 너구리 네 마리를 수습하여 보살피고 있었다.

   원효를 보자 반갑게 맞이한 후 대안대사는 너구리 새끼들에게 줄 젖을 동냥해 오겠노라 하면서 원효대사에게 너구리 새끼들을 맡기고 급히 마을로 내려갔다. 그러나 한참이 지났는데도 대안대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굶주림에 지친 너구리 새끼 한 마리가 그만 죽고 말았다.

 굶주린 너구리 생명수는?

   원효는 당황하였고, 굶어 죽은 너구리가 너무 가엾어서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경을 외면서 염불을 하였다. 그 때 황급히 돌아온 대안대사가 원효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원효는 죽은 너구리를 내려다보며  “이 놈의 영혼이라도 왕생하라고 경을 읽는 중입니다.”

  그러자 대안대사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미 죽은 너구리가 그 경을 알아듣겠는가?”

  “큰스님, 그러면 너구리가 알아듣는 경이 따로 있습니까?”

  대안대사는 동냥해온 젖을 너구리에게 먹이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너구리가 알아듣는 아미타경이라네.”

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너구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안대사의 일갈에서 보듯 고상한 ‘아미타경’이 아니라 한 모금의 ‘젖’이었다. 어미를 잃고 굶주림에 지쳐 있는 너구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수는 바로 ‘동냥젖’ 한 모금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정작 필요한 ‘젖’을 구하기보다는 원효처럼 ‘아미타경’을 외우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에서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아미타경’은 무엇일까? 즉, 너구리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동냥젖’처럼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국민이 교육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우리 국민이 그 동안 가져왔던 교육열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학생 자신보다는 학부모의 눈으로, 또는 기성세대의 관념으로 우리 아이들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학생이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게 하고 최선을 다하게 하기보다는 수입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분야를 정해 놓고 이를 택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부 잘 하는 학생은 한결같이 법관이나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은근히 압박하고 있다. 이는 결코 학생들의 무한한 역동성과 생명성을 활기차게 열게 하는 ‘동냥젖’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사회적 관습과 기성세대의 편협한 가치관에 매몰되게 하는 가혹한 ‘아미타경’에 지나지 않는다.

 꿈·비전 교육의 화두로

   최근 우리 국민들에게 긍지와 행복감을 만끽하게 한 양용은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19세에 골프장 볼보이로 골프에 입문하여 18년 만에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선 그의 성공담에 그저 들뜰 일이 아니다. 그가 보여줬던 의지와 신념, 그리고 꿈과 비전을 교육의 화두로 삼아야 한다. 즉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굳센 의지와 신념, 성공할 수 있다는 꿈과 비전이 바로 교육을 통해서 일깨워야 할 소중한 '아미타경’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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